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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를 드러낼수록 강해진다

by 햇살정아


콤플렉스를 드러낼수록 강해진다는 말...


적극 동의한다. 나 홀로 끙끙 앓고 있던 것을 입 밖으로 내민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다. 그만큼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뜻이기에!


말로 나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나는 점점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꽁꽁 숨겨두었던 나만의 콤플렉스가 2~3년 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로 '전업주부'란 타이틀이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그 길을 걸으며 아이들과 무지개빛깔을 만들며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기특하다고 칭찬도 하며 뿌듯해왔던 시간들이었다. 무색하게도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남은 건 소심해진 마음뿐이었다.




아이를 돌보면서 친하게 지냈던 엄마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고 혹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나 같은 전업주부들은 이 사회의 잉여 인간이 되는 것만 같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이 나를 더 채찍질했다.



그리고 부모님 주변엔 왜 이리 엄친아들이 많은 건지.... 어렸을 적 들었던 엄친아 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잘나고 멋진 사람들의 그럴 싸한 이야기가 나의 배를 움켜쥐게 만들었다. 부모님 역시도 나한테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나는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내몰았다.



나는 누군가의 한마디에도 울고 웃는 아이 같은 어른이 되어갔다.


마치 조그만 물살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자책하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침잠의 세계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처럼 나도 무언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학교를 보내고 출근 도장 찍듯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내 이 세상 곳곳에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라는 《장미의 이름》의 서문에 나오는 인용구처럼 도서관은 나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책을 읽으며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잊혔던 나에 대한 열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아이들에서 나로 시선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마음이 금세 사그라질까 부지런히 자기 계발을 위한 것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를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나의 성장의 시간은 문을 열게 되었다.



배움터에서 만나 사람들의 열정은 모두 '체험 삶의 현장'의 주인공처럼 놀라울 정도로 열심이었다. 나는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징징 대기만 한 것은 아닌지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만든다'라고 했다. 일 년 넘게 나는 온라인 세상에서 만난 도반들 덕분에 성장 버스를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 성공이 아닌 성장의 길을 함께 나누는 시간들 덕분에 나는 나의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나아갈 것이란 믿음이 내 안에 장착된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수확이기도 하다.



서툴고 느리고 실수해도 그다지 큰일이 일어나진 않는다는 것을 이젠 안다. 내 삶은 어떠해야만 한다는 강압적인 틀에 나를 가두지 않고 조바심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기로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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