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육아 덕분에 배웁니다.

화성에서 온 아빠, 금성에서 온 아들

by 햇살정아

지난 금요일 오후, 남동생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누나 주말에 뭐 해?”

-애들 데리고 뮤지컬 보러 가.


“아니다~”

-왜 무슨 일 있어?


누나의 시간을 살피는 남동생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역시나다.

올케의 주말당직 근무가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나의 남동생과 13개월 조카의 친밀도는 0%.

'화성에서 온 아빠, 금성에서 온 아들'도 아닌데

서로가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모르다 보니 둘이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곤욕의 시간이다.



남동생의 잦은 해외출장으로 아이를 자주 만나지 못했고, 함께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점점 낯가림이 심해지는 시기인 조카가 아빠를 무서워하고 낯설어하게 된 것이다.


이미 지난달 올케의 당직 때도 그들의 아수라장을 본 터라

뻔히 알면서도 1박 2일간의 주말 조카육아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만,

다 큰 줄 알았던 10살 딸내미가 은근 2살 아기한테 시샘을 부리다 보니 딸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내 엄마야~ 내 엄마~ 너 저리 가!"


딸도 조카를 많이 예뻐하지만 문득문득 질투의 요정이 딸에게 찾아오나 보다.

그럴 때면 다 큰 줄 알았던 딸아이의 아기 같은 모습이 웃기면서도 안도감이 생긴다.


여전히 엄마의 존재감이 있구나^^


품 안의 자식처럼 평생토록 끼고 살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 시간이 천천히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아이가 훌쩍훌쩍 자라는 키만큼 아쉬움이 커지고 있는 요즘이었다.





아이들은 귀신처럼 안다.

누가 나의 입맛을 더 잘 맞춰주는지….

해치려는지 돌봐주려는지….


곤히 잠들어 있는 천사 같은 조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참 애틋하다.


다시 아이를 키우는 느낌,

내가 직접 아이를 낳았다고, 핏줄로 연결되었다고 저절로 애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얼마큼 나와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을 비비며 사랑을 나눴는가가 관계를 만듬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주고,

두 손바닥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까꿍놀이를 하고,

응가 싸면 시원하게 씻기며,

토실토실 살이 오른 호빵 같은 궁둥이에 실컷 뽀뽀하며 부비부비하는 것.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이렇게나 평범하고 아득한 일상의 연속이다.

그렇게 시시하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소소한 일상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되어간다.


내 아이 키울 땐 미처 몰랐던 것들을 조카를 보며 느낀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오늘의 사랑스럽고 따스한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세상을 좀 더 활기차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이의 이야기를 좀 더 다정하게 들어주고,

사랑으로 정성스레 바라봐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오늘도 배우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