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래간만에 대학 동창생들을 만났다.
이번엔 그동안 못 보던 남자 동창생들도 몇몇 나왔다. 오늘을 위해 몇 날 며칠부터 마눌님의 비위를 맞추었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고, 또 마눌님이 잠자는 틈에 몰래 나왔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친구도 있었다. 그날 옹기종기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우리는 여전히 풋풋한 스무 살이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우리의 대화의 모든 것은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였다. 20년 전으로 빠르게 되감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생생하게 잘도 기억해 냈다. 때때로 서로의 어긋난 퍼즐을 맞추며 오해를 풀기도 하고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고, 어떤 남자 동창생이 여자 동기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겉모습은 쌀쌀맞은데 의외로 잘 맞추어주고, 또 누구는 겉모습은 착해 보이는데 속은 오히려 세다는 둥. 그러면서 나에게는 "너는 그냥 해맑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맑다? 동사자체로는 좋은 뜻인 줄 아는데 왠지 느낌이 썩 좋게만 들리지 않았다.
'생각이 없다는 건가? '
여전히 그 친구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때 분위기와 억양이 순수하게 좋게만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 친구는 정말 100프로 순도 넘치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나는 그것에 대해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어떤 것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을까?, 나는 삐뚤어진 인간인가'
계속해서 '너는 그냥 해맑아' 라는 문장이 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나의 트레이드 마크 '햇살'은 맑고 밝다는 뜻이다. 처음 그 닉네임을 지을 때도 자주 들어왔던 나의 이미지와
봄날의 햇살의 의미를 담아 '햇살정아'라고도 지었다. 내 손으로 직접 지어놓았지만 왠지 밝고 순수하기만 이미지가 전문성이 떨어져 보였다. 어디선가 사람은 '이름'따라 산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주위를 봐도 대부분이 이름처럼 살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무엇이든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나를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의 이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이왕이면 전문적이고, 멋있어 보이고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처럼 도도해 보이고 싶었다. (지금 나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이지만^^) 어쩜 그 그릇이 내 그릇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꿈꾸는 것은 자유니깐 희망사항처럼 마음에 숨겨놓고 있었다.
이런 고민의 나날중에 '해맑다'라는 누군가의 평가는 '너는 해맑기만 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 멋대로 판단하고 혼자 상처받았던 것이다.
고백컨데, 사실 나에게 좋으면서 나쁜 습관이 있다. 바로 '웃는 것'이다. 너무 자주, 많이!!!
사람들이 나에게 '잘 웃는다, 성격이 밝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나는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웃음'으로 회피하였던 것인데.... 어쩌다가 웃음이 웃음을 낳고 또 웃음을 낳아서 내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진 것 같다. 때론 마음이 웃지 않을 때도 어느새 얼굴은 웃고 있을 때도 많다. 자동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지금의 모습을 좋아라해야 할지, 좌중해야할지....누군가의 평가나 비판이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엊그제의 나처럼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조용히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 때도 많다.
오늘의 글을 쓰면서 새롭게 생각난 것이 있다.
어쩜, 나는 정말 해맑게 웃는 사람일지도???
기억을 잘 잊어버리기에 투명한 사람일지도??
내가 만든 웃음이 진짜 나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그것을 나만 모르는 건 아니었을까?!!
정말 그 친구의 말대로 해맑을 수도 있는데...
괜한 죄책감은 접어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자.
지금처럼, 좋아하는 것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이미지가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다.
쓸데없는 생각과 의심으로 에너지를 더이상 소비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