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족밴드'가 생각났다.
남편과 나만 볼 수 있는 밴드다. 육아의 기록을 매일은 못하더라도 가끔이라도 적어보기로 약속한 공간이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기록이 멈춰있었다는 것에 아쉬움을 달래며 쭉쭉 커서를 올렸다.
동영상 속의 쪼그마한 아이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이었고, 한글을 떠듬떠듬 읽는 아들의 모습에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해하는 내가 보였다. 지친 무더위 속 징징대는 아이들의 모습, 다리가 부러져 깁스하고 있는 아들, 두 아이의 통통한 볼살, 앙증맞은 표정이 담긴 사진, 엄마를 감동시키는 멘트 하나하나가 신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귀하지 않은 추억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언제 하얗고 보드라운 아기천사 둘을 키웠는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마냥 아쉽고 아깝기만 하였다.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물고 빨았던 그 시절은 어느새 새까맣게 잊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잔소리를 삼켜내기 바쁜 요즘이었다. "더 많이 사랑해줄걸~" 이라고 후회하다 갑자기 번뜩 생각이 지어진다. 후회할 시간에 지금 여기서 더 많이 보듬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사랑을 주어야겠다고. 오늘의 사랑에 충만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메모의 곳곳을 보면 내가 '명랑'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해맑은' 나의 모습에 마냥 기분 좋지 않았던 내가 알고 보니 나는 정말 해맑아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참 많이 노력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간 아버지가 숨어서 지켜보는 아들에게 이 상황이 게임인척 걸어가며 안심시켰던 장면처럼.
세상 모든 엄마,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긴 육아의 터널을 지나와보니 '좋은 엄마'라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엄마는 자동으로 따라온다. 내가 아이에게 원하는 데로,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도 못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지, 나에게는 관대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엄격한 것은 아닌지 매번 자기 검열에 들어간다. 아이를 잘 키우고자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나의 욕심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지 고민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들의 밝은 미소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아들의 웃는 모습을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교 후 들어오는 아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엉덩이를 흔들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아들은 다행히 두 팔 벌려 웃음으로 회답을 주었다.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