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무게

이젠 자유롭고 싶다!

by 햇살정아

내가 세상 빛을 본 지 딱 20개월 되던 날!

쌍둥이 남동생 둘이 찾아왔다.


80년대 쌍둥이는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집안 경사와 다름없었다.

집에 없었던 탈수기를 바로 집안에 들일 정도니 말이다.

(그땐 세탁기도 아닌 탈수기도 귀했던 시절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어린 아기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동생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만 했다.

대신 '누나' , '첫째', '장녀'라는 책임감과 의무감은 남겨 놓은 채.



엄마는

아기가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주며 일찌감치 철이 들은 나를 애잔하게 생각하신다.



나는 본능적으로 동생 둘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 같다.

아~ 나는 엄마를 도와야 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구나!

어릴 적 모습들은 생생히 기억나지 않지만 늘 엄마의 그림자처럼 엄마를 따라다니며 도왔다.



유난히 남동생들은 짓궂고 극성맞았다.

둘이라 시너지 효과가 더 컸던 것일까?

엄마 속을 징글징글하게 썩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동생이 사고 치고 온 어느 날이었다.


너라도 조용히 있어,

너까지 속 썩이면 엄마는 죽는다.


엄마가 무심코 내뱉은 말은 비수처럼 어린 나에게 꽂혔다.



무서웠다.

엄마가 정말 죽을까 봐.



엄마, 죽으면 안 돼~

나는 속 안 썩일게요!



그렇게 늘 다짐하며 조용히 지내왔다.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평화주의자'라도 된 듯 분위기를 맞추며 손이 덜 가는 아이, 착한 딸이 되어갔다.



그리고 남들에게 밝고 씩씩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런 모습을 엄마가 좋아하니깐.



나름 성공했다.

그 노력은 자연스럽게 삶의 자세가 되어 습관이 되고 태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때론 그동안 참아왔던 억눌린 감정들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와르르 무너지기도 했다.

마치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케케묵은 지난날의 감정까지 모두 끌어모아 한없이 슬픔에 잠식된다.

주체할 수 없는 최대치의 눈물을 모두 쏟아내야 그 시간도 끝이 난다.



모래성 같은 연약한 자존감을 탓하며 어떻게 하면 튼튼한 자존감성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데미안에서,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을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무릎을 치는 구절을 만났다.



그래, 알에서 나와야겠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더 이상 착한 딸, 착한 누나가 아닌 온전히 내가 주인공이 되어 진짜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드디어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도 않았고 시키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해묵은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었음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주문을 외운다.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해도 괜찮아,

자유로워지자.



앞으로도 내 기대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을 테지만,

내가 조금씩 변화하기 위해 도전하고 성장하는 것만은 기대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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