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가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과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이과를 선택하였어도 한자수업은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고 뒷목을 잡았다.
어리버리 이과생은 공대생이 되었다. 2000년 밀레니엄시대의 걸맞은 나름 최고 유망학과였던 '정보처리기술학부'에 진학하였다. 나랑 꿍짝이 잘 맞는 선배와 동기 따라 전자과 수업을 듣고 전자과 졸업생이 되었다.
공부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제조업체의 사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면서 가끔 듣는 소리가 있다.
"전자기기 엄청 잘 다루겠어요?"
영문과 나와도 영어 다 잘하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도 전자과 나왔어도 전등하나 못 바꾸고, 로봇청소기에 실타래가 꼬여도 청소기하나 분해못하는 사람이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노릇이기에.
내가 만약 전과를 하였다면?,
편입시험을 봤다면 더 나은 삶이 이어졌을까?
아니다. 그것에 대한 또 다른 후회가 있었을 거다.
어떤 선택이든 후회는 그림자처럼 따라오니깐.
이렇게 자기 합리화로 허전한 마음을 덮어버렸다.
전업주부로서 아이에게 집중하며 교육에 관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때서야 방송대 교육학과로 편입하고 공부하면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따른 변화에 대해 알게 되니 아이의 이해 못 할 행동들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닌 성장통일 뿐이라는 것을.
역시나 기다려주고 마음을 알아주니 아이들도 다시 제자리를 찾고 평온해졌다.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 절실히 후회했다.
대학생 때 기분에 들떠 놀러 다니고 술 마시고 연애할 시간에 나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고민해 볼걸.
대학시절 때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어떠한 도전도 하지 못했다.
나의 찬란했던 20대, 젊었고 열정 넘치던 패기로 어떤 것도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충분한 나이였는데
닫힌 생각으로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20대의 시절로 돌아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당찬 배짱으로 무작정 전진하고 싶다. 하나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세상에 마구마구 던져 버리고 싶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맷집을 키워가며, 돌부리 틈바구니에서도 꼿꼿이 고개 드는 잡초처럼 강인한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