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금질의 시간

헬퍼스 하이

by 햇살정아

밥상마다 항상 국이 있어야 하고, 아침에 먹은 국이 저녁에 올라오면 투정 부리는 아빠가 싫어 엄마는 1년 365일 생일상 같은 밥상을 늘 차려오셨다. 그 일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엄마는 특히 봄이면 더욱 바빠진다.


1. 시골에서 잔뜩 뜯어온 취나물을 데치고 무치고 남은 것은 냉동고에 한가득 채워놓는다.

2. 유난히 물김치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미나리와 돌나물로 물김치 담근다.

3. 겨우내 먹었던 김장 김치에 싫증을 느낀 아빠는 꼭 제철 김치를 원한다. 봄에 나온 채소로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배추겉절이 만든다.

4. 물김치의 끝판왕, 여름에 먹을 오이지를 담근다. 소금에 절여져 쪼글쪼글해진 오이지를 시원한 물에 타서 식초로 간을 맞추고 먹는 맛은 여름의 별미라나? 그것을 위해 엄마는 오이를 항아리에 한가득 담아 해수욕시키기 바쁘다.


시기별로 여름에는 호박 만두, 겨울에는 김치 만두를 직접 집에서 만들어먹는다. 까다로운 식구들 식성 맞추느냐 엄마는 가끔 유튜브 레시피를 참고하며 새로운 반찬을 만든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나에게도 비법을 전수해 주신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동생네와 가깝게 살다 보니 자주 모여 식사를 한다. 식탁 위의 정다움은 참 좋지만 그것을 준비하기까지 걸리는 수고로움은 나와 엄마를 피곤하게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을 나와 엄마는 함께 한다.

짜증 나고 힘들었지만, 엄마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진 모습이 안쓰러워 보조역할을 자진했다.


주방 살림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딸내미 데리고 하려니 엄마도 힘드셨을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들을 때면 김치 좋아하는 식구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대충 안 먹고 지나가면 안 되나 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속은 울화가 치밀었다. 물론 식탁 위에 올려진 탐스럽운 음식을 먹을 때면 그 마음은 자연스레 씻겨 내려갔지만...


그 덕분에 눈칫밥도 많이 늘었다. 엄마의 다음 동작이 예상되었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니 내 동작도 척척 빠릿빠릿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엄마와 손발이 잘 맞는 환상의 짝꿍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젠 며느리와 합을 맞추려다 속 터지는 엄마를 내가 위로할 지경이 되었으니...

나 참 많이 컸다!


또한 시댁 식구가 온다든지, 손님 접대에도 예전만큼 어렵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다. 까다롭고 유별난 친정 식구들 덕분에 동작과 눈치가 빨라진 것이다. 이젠 어느 정도 엄마의 손맛을 흉내내기도 하여, 내가 만들고 내가 맛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담금질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하고 겪다 보니 곧 그것은 어제와 다른 성숙한 내가 되어 있었다.

엄마를 돕고 싶던 애틋한 마음이 살림살이에 베테랑이 되고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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