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수백 번, 수천번을 다녔던 시골 할머니댁도 지금도 혼자서는 절대 못 찾아간다. 친절한 내비의 안내에도 길을 잘못 들어 예상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는 것은 나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런 나를 너무도 잘 알기에 약속 시간보다 30분~1시간 정도 미리 나서야 맘이 편하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약속을 늦어본 적이 거의 없다. 칼같이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으로 의도치 않게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길치 덕분에 내 평생의 짝꿍을 만나게 되었다. 유럽 배낭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난 친구가 지금은 한 지붕 한 이불 안에서 아옹다옹 살고 있다.
로마의 여인이라고.... 제목만으로도 이미, 벌써 낭만적이지 않은가?
음~ 역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 오드리 헵번과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 그레고리 펙처럼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라고 나도 말하고 싶다!!
한 달 가까이 타국에서 헤매며 긴장과 피곤함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은 구세주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구세주의 눈웃음은 자두맛 사탕처럼 달콤하고 초승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결국 그 눈웃음에 속아 13년째 부부의 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가뜩이나 지도와 지리에 약한 내가,
스스로를 못믿워하는 내가,
의지할 사람이 나뿐이라...
어쩔 수 없이 종이 지도를 짚어가며 길을 찾아다니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유럽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우려에 늘 초긴장상태로 가방을 붙들고 다니고, 돈 아껴서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은 욕심에 맛없고 딱딱한 바게트 빵쪼가리, 샌드위치만 먹다 보니 허기도 지고~ 그땐 그런 헝그리정신으로 배낭여행을 즐기는 것이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덕분에 나는 배고픈 여행자가 되어갔다. 젊음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건강한 20대 청년이었지만 한 달이 가까워지는 낯선 도시를 여행하면서 점점 에너지는 고갈되어 갔다. 누구에게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함부로 누군가를 믿고 따른다는 것도 무섭기도 하였다.
남편은 나와 동갑내기, 학회일정으로 시칠리아섬에 왔다가 잠시 로마에 들렀던 학생이었다. 남편은 나의 두 눈이 되어주었고, 가이드처럼 나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손짓 발짓으로 통역하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관광객들로 바글바글 되는 트레비분수에서 우린 동전 2개도 던지고~!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졌나 보다.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진도 찍고 서슴없이 지갑을 여는 남편덕분에 배부른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친구가 연인이 되어 사랑을 나누고 이쁜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내가 만약 유럽에 가지 않았다면, 내가 만약 길을 잘 찾는 아이였다면, 내가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 이런 소중한 날들이 나에게 주어졌을까? 언제 어디서든 잘 헤매는 나의 성격이 의타적으로 만들었고, 덕분에 평생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나쁜 것이 다 나쁘지도 않을 때도 있나보다.
ps. 로마의 휴일, 마지막 장면에서 앤이 조에게 "로마에서의 하루를... 죽는 날까지 소중히 간직할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촉촉하고 슬픈 눈물을 보여주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