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어떤 손잡이를 움켜쥘 것인가.

by 햇살정아

나는 여름밤을 좋아한다. 대낮의 뜨거운 열기가 한풀 꺾이고 땅거미가 어수룩하게 지는 초저녁, 온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먼 산 너머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에 맞장구쳐주며 웃는 남편의 모습도 좋아한다. 봄의 프리지어 샛노란 빛을 좋아한다. 가을의 청량한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겨울이면 아이들의 코가 샛빨개지도록 눈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딸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징징이 꼬맹이가 어느새 어린이가 되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하는 모습이 뭉클하다. 가을밤 집 밖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와 겨울을 재촉하는 갈대바람의 소리도 좋아한다. 엄마의 화장실 뒤꽁무니까지 따라와 조잘조잘 대는 딸아이의 수다를 좋아한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돌 지난 조카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한다. 토실토실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호빵 같은 궁둥이를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의 보드라운 토끼털 목도리를 만져 보기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를 좋아한다.


나는 새콤달콤한 귤을 제일 좋아하고 살얼음이 동동 띄워진 메밀국수를 좋아한다. 아이들 키울 때부터 비상 간식으로 가지고 다니는 사탕 한 주머니, 그중 청포도맛 사탕을 아이들과 하나씩 까먹는 것을 좋아한다. 24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한봉다리 가득 사 오는 길에 동네에서 쭉쭉 빨아먹는 딸기맛 쭈쭈바를 좋아한다.

나는 베이커리카페를 지날 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빵냄새를 좋아한다. 아침마다 나를 위해 내리는 커피 향을 좋아하고, 엄마가 집에서 구워주는 군고구마 향기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이면 남편이 부쳐주는 고소한 파전의 기름냄새를 좋아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이 내는 초록의 향기를 아주 좋아한다.


앞으로 읽을 책들이 많다는 사실을 좋아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 속지에 아이들에게 엄마의 한 조각을 남기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좋아한다.


일상의 주어진 모든 순간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나를 좋아한다.


오늘도 사랑하는 나의 생활을 움켜쥐고, 고운 마음으로 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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