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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경 Feb 12. 2022

불멍

29살 여름, 가만히 바라만 보다가

안개가 자욱한 바위 골짜기, 해가 가장 높이 뜬다는 정오에도 화창한 햇볕 한 번 들지 않는 곳. 냉랭한 물가 위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말입니다. 하필이면 물에 맞대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대도 잡히는 것은 물컹한 진흙뿐입니다. 비가 한바탕 쏟아질 때면 스러질까 두렵습니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바위투성이에 뿌연 안개, 물가에 비친 제 모습이 전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그스름이 일렁이는 것이 저편 물가에 비쳤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생전에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은 무섭지만 반갑고 궁금했습니다. 


날아든 산비둘기에게 저것이 무어냐 물었더니, 불이라는 것이랍니다. 멀리서는 밝게 빛나고 근처에 있으면 세상이 환해지고 노곤 하게 따스하더랍니다. 그런데, 너무 가까이는 가지 말라 하였습니다. 일렁이는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는 찰나 까맣게 재가 된다 하였습니다.


달빛이 몇 번은 바뀌고서 그 반가운 것이 더 크고 환하게 일렁였습니다. 코앞까지 와있는 것처럼. 너무나 신이 났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너무 가까운 것이 아닌가 두려웠습니다. 잠잠하던 공기조차 불속에 뛰어드는지 바람이 불어 듭니다. 눈을 뗄 수 없습니다. 혹여 재가 될까 두렵습니다. 다시 마주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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