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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Mar 25. 2019

이기적인 나의 이별 방식

네 번째 Pop 이야기:  Goodbye

Pop Memory#004


누군들 좋아할까만은 나는 정말 이별이 싫다.


열 살도 안 되었던 어린 나날에 여름이면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며칠 지내곤 했었다. 그러고 엄마 손에 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한껏 입이 삐져나온 채 한동안 뾰루퉁했다. 기껏 친해진 외가 주변 동네 또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고, 한없이 내게 다정했던 누나와 내가 몰랐던 여러 가지(?)를 재밌게 알려주던 네 살 터울 형을 잃는 게 싫었다. 외삼촌 댁을 서슬 퍼렀게 지키던 황금빛 진돗개 독구(혹은 도꾸, 아니면 나비)를 못 보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불 다 꺼진 시골의 깊은 밤 아랫목에 이부자리를 깔고 '주야'하고 부르며 따뜻하게 품어주시던 외할머니와 떨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런 내게 '졸업'은 감정적으로 힘든 단어였다. 유치원 졸업식 땐 항상 붙어 다니던, 덩치만큼이나 마음 넉넉했던 친구를 더 이상 못 볼게 두려워 수도꼭지 튼 것 마냥 울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땐 나와 사이좋지 못한 친구 몇 놈과 떨어진다는 것 말곤 이내 친한 녀석들 대부분이 나와 다른 학교에 배정돼서 나만 홀로 외딴섬에 버려진 느낌이었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엔 엄청 친했던 동네 학원 친구 두 녀석과 떨어지기 싫어 부모님 허락도 떨어지기 전에 셋 다 모두 같은 학원에 등록해버리기도 했다. 수능이란 첫 관문에 좌절한 나머지 고등학교 졸업은 실감도 안 났지만, 기숙사 시스템의 재수학원에서의 마지막 밤 같은 반 친구들 모두 모여 맥주 한 캔 마시며 잘 되길 빌어주면서도 무척 아쉬워했다. 학부 졸업식보다도 더 기억나는 건 한 학기만에 석사과정을 포기하고 나가는 친구의 송별회에서 술에 취해 연신 못 챙겨줘 미안하다 말하며 그 나이에 참 안 맞게 울었던 못난 내 모습이었다.


이랬으니 예전 연인들과의 '이별'도 수월했을 리는 더욱 없다. 나 자신도 머리로 이해하기 힘들 만큼 함께 한 시간만큼 한 때의 인연을 겉으로는 아닌 척 속으로만 무척 그리워했다. 꽤 오래 사귀었던 그녀와 헤어졌을 때가 스스로 생각해도 가관이었다. 이별 직후 한동안 슬픔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았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게도 그때만큼은 회사 근무시간이 제일 좋았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그녀와, 그녀와 함께한 모든 시간과, 그녀를 놓쳤다는 자책감과 상실감, 그리고 절망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라는 외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석 달, 나 자신을 괜찮다고 토닥여줄 여유가 생긴 건 반년, 그리고 그녀를 마음에서 보내주는데 삼 년이 걸렸다. 참 미련하게도 말이다. 오죽하면 날 낳아주신 어머니가 한마디 툭 던지셨다. '문디 자슥아, 니 참말로 와그라노? 내 아들 맞나?' 저도 몰라요, 엄마.


바둑용어에 '복기'란 말이 있다. 승패가 이미 난 판국을 다시 두어가며 자신의 수를 비평하는 걸 말한다. 참 변태 같게도 나는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복기한다. 가끔은 심적으로 너무 자학적이라 느끼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한 수 한 수 두어가며 과거의 나를 바라본다. 마치 넷플릭스로 내가 주연인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러면 알게 된다. 하지 말았어야 할 것들과 안 해도 됐을 일들. 해야 했어야 할 것들과 하면 참 좋았을 일들. 부질없는 짓이지만 적어도 다음번에는 모지리같이 똑같은 실수를 하진 않게 된다. 생각이 많아 봤자 좋을 건 없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하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복기'만큼은 그냥 하게 내버려둔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대상과 다양한 형태로 이별을 겪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부재로 인한 상실감이 상대를 얼마나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 했는지에 비례한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문제는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 돼서야 비로소 내가 상대에게 가졌던 감정의 크기를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뒤늦게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 살배기 때부터 십 년 넘게 내 잠자리를 함께 해줬던 곰돌이 인형을 쉽게 버렸던 안타까움이, 요양원에 계셨던 외할머니를 좀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단 후회가, 날 호감으로 대해준 모든 이들에게 더 친절하지 못했단 한탄이, 그리고 날 떠나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 마음을 많이 표현하지 못했단 회한이 때때로 쓸쓸하고 외로운 밤에 찾아와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그러면서 복기하며 얻은 깨달음이 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면 먼저 다가갈 것, 아끼지 말 것, 그리고 재지 말 것. 그래야 관계의 끝에서 아쉬움이 남아도 미련은 크게 남지는 않으니까.


일 년 하고도 반년 가까이 애정을 쌓았던 모임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그게 내가 가장 최근에 한 이별이었다. 사회에 나온 이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단톡방의 왁자지껄한 잡담을 보는 것도 좋았고, 글이란 매개체로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좋았다. 때때로 끼리끼리 만나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즐거웠고, 이곳저곳 함께 놀러 다니는 건 더 즐거웠다. 덕분에 글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내 2018년은 즐거운 모임의 연속으로 오롯이 채워졌다. 하지만 올해 모임의 첫자리에서 이별을 떠올렸다. 그 전에도 언젠간 이 모임도 그만둘 때가 오겠지 하며 농담처럼 막연히 생각했던 헤어짐을 사실상 결심했다. 연속된 좌절에 내 마음에는 여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서슴없이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없었다. 애정이 애착을 넘어서 과도한 기대를 바랐다. 그래서 아낌없이 내 마음을 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내 그늘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래서 주절주절 내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 선을 지키는 것, 날 위해서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추해지기 전에, 더 미련이 남기 전에 떠났다. 썩 좋은 모양새가 아니란 걸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이 싫다. 단어조차 반갑지 않다. 그래도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다가올 일이다. 두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한 채 더 큰 회한의 감정에 휘둘리기는 더욱 싫다. 어떤 식으로든 해야한다면 적어도 미련만 최소한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아쉬움은 남겨도 미련은 남기지 않는 것, 그게 이기적인 내 이별 방식이다.



Introduction of Song
Ra.D, Goodbye

Ra.D는 꽤 오랫동안 활동한 R&B 뮤지션이다. 2009년 발표한 그의 곡 'I'm in love'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었고 이후로도 현재까지 작곡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I'm in love'의 이미지 덕분에 감미로운 R&B 가수로 기억하지만, 그의 시작은 힙합이었다. 조PD의 명곡 'My style'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다이나믹 듀오와 UMC/UW의 음반에도 참여했다. 2007년부터는 직접 'Realcollabo'라는 레이블을 세워 상당히 활발한 음악활동을 했었다. 그 결과로 2집 'Realcollabo'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미 공인받은 Ra.D의 2집 'Realcollabo'는 지금 들어도 전혀 올드하지 않은 세련미를 가지고 있다. 타이틀곡 '멋있는 친구'부터 여러 아티스트들이 부른 'I'm in love', TV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초대 가왕 f(x) 루나가 불렀던 '엄마', 대놓고 솔로들의 염장 송 'Couple Song' 등 모든 곡이 좋다. 심지어 'Couple Song'은 함께 부른 이가 Kelley라는 사람인데 자기 와이프다. 이 명반에서 이별의 이야기와 엮을 곡은 'Goodbye'이다. 사랑했던 연인을 향한 아쉬움이 담긴 가사이지만 어떤 형태의 이별이든 그 끝은 늘 아쉬움인지라 이 곡을 택했다. 그렇다고 미련이나 회한을 남기진 말자.


봄을 맞아 Ra.D의 곡 중 'Couple Song'과 '고마워 고마워'를 들어보길 권한다. 방송에서 대놓고 염장질 하는 뻔뻔한 가수 Ra.D를 각오하길 바라지만 그걸 떠나서 노래는 좋다. 하... 젠장. 다른 한 곡 '고마워 고마워'도 연인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언어로 되어있지만 'Couple Song'보다는 낫다. 뮤직비디오도 배우 김슬기가 매우 귀엽게 나와 미소가 절로 지어질 만큼 사랑스럽다. 결정적으로 두 곡 다 멜로디가 예쁘고 좋다.


심지어 이 염장송을 스케치북에서 불렀다... (올렸지만 보지 마라. 짜증 난다 -_- )
Ra.D, '고마워 고마워'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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