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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Apr 05. 2019

아버지와의 인터뷰

다섯 번째 Pop 이야기 :  Yesterday

Pop Memory#005


학부 3학년 때 '과학사'란 과목을 수강했다. 공학인증 필수 교양이었기에 들었을 뿐 전혀 흥미는 없었다. 중간고사가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강사는 수업이 끝날 무렵 큰 글씨로 판서했다. 백여 명이 들어찬 강의실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내용은 이랬다.


과제: 인물 인터뷰

내용: 70~80년대 산업화를 겪은 주변 인물의 상세 경험담

제출 형태: 녹음테이프, 녹취록,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인터뷰 요약보고서


"학기 초에 얘기했죠? 과제는 하나지만 비중은 40%예요."


강사는 서울대 규장각 연구원이라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공대생들에게 생소한 과제를 투하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에는 질문이 빗발쳤다. 더 있을 필요 없어 시끄러운 강의실을 나섰다. 이미 난 적합한 인터뷰이를 알고 있었다.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았던 분들 중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나의 아버지였다. 강사는 음험하진 않았지만 연구원답게 자신의 목적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과목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본인 입으로 올해 연구 주제는 '대한민국 산업화'라고 밝혔다. 그렇다. 연구 자료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뻔히 보이는 계산이 매우 불쾌했지만 학점은 잘 받고 볼 일이니 쓸데없는 감정을 흘려보냈다.


아버지는 고졸이셨다. 대학은 못 다녔지만 당신이 강릉상고 출신임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셨다. 비록 엄마는 그게 머 그리 대수냐 콧방귀를 뀌셨지만, 곧잘 이렇게 대꾸하셨다. '그래도 강원도에서는 알아줘!'. 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친가에서 칠 남매 중 넷째로 각자도생 해야 했다. 상고 진학으로 겨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그 간판 하나 가지고 홀로 울산으로 향했다. 그때 아버지 나이 갓 스무 살이었다. 그렇게 울산은 당신 평생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곳으로 그해 오월의 어느 날 아버지를 뵈러, 아니 인터뷰하러 갔다.


"아버지, 제가 질문 몇 가지 미리 추려서 준비했어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드리는 질문에 편하게 답하시면 돼요."

"이거 학교 수업에서 해오라는 거가? (니 학점 잘 받으려면) 잘해야 되는 거재?"

"(학점은) 제가 어떻게 정리하냐에 달린 거니까 아버지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주세요. 아들한테 옛 이야기 한다 셈 치고요."

"오냐. 알았다."

 

말은 '오냐'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짧은 목이 더 짧아졌다. '니 아버지 봐라 ㅋㅋㅋ' 이러면서 비웃는 엄마를 방에서 쫓아내고 나서야 인터뷰는 시작됐다. 나는 분명 녹음기를 켰는데 난데없이 아버지가 로봇이 된 줄 알았다. AI 음성기술이 개발되기도 전이었는데 사투리 억양이 탑재된 톤에 딱딱한 AI 말투가 그의 주름진 입가에서 퍼져 나왔다. 거기다 딴에 인터뷰라고 모든 답변을 존대로 얘기하셨다. 터지는 실소를 겨우 틀어막았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오히려 이야기하다 보면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 멈춤 없이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인터뷰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70~80년대의 대한민국 산업 현장의 생생한 경험담에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이의 스토리텔링도 인터뷰어로서는 중요하기에 '왜'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한 질문 한 질문 넘어갈수록 아버지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고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느덧 방에 몰래 들어온 엄마도 옆에서 '그때 그랬지', '암', '좋았지' 이러면서 추임새를 넣으셨다. 인터뷰 도중 엄마한테 술 한 상 봐달라고 청해볼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의 난 몸이 썩 좋지 못했기에 그런 말 했다가는 찰지게 등짝 스매싱 맞기 좋았기에 거두었다. 어쨌든 내가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젊은 나날을 아버지의 입을 통해 차근차근 따라갔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질문지에 없던 물음을 던졌다.


"아버지의 전성기는 언제셨나요?"

"......"


아버지는 잠시 말을 잃으셨다.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셨다. 옆에서 맞장구치며 듣던 엄마도 한숨을 내뱉으셨다. 답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된 거 나는 아버지가 본인 입으로 모든 걸 토해놓길 바랐다.


"과장되고 딱 이 년. 그때가 참 좋았지요. 고졸 출신으로 동료들보다 먼저 과장 달았던 그때가 좋았어요. 내 위로는 선배한테 인정받고 내 밑으로 서른 명 정도 거느렸고 돈 따박따박 잘 나왔고 어디 가서 나 XXX(본인 성함), 현대자동차 다닌다 카면 대접 꽤 괜찮았어요. 게다가 내 자식 새끼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 공부 잘했고... 진짜 남부럽지 않았어요. 그놈의 IMF만 안 터졌으면..."

"마, 됐네요. 그래도 이만큼 살면 됐지... 수고했네요, 여보."


아버지가 한탄하자 엄마가 옆에서 어깨에 손 올리며 달래셨다. (물론 인터뷰를 감안하고 아버지께 존대한 거였다. -_-;) 몇 초 정도 마음 추스를 시간을 드린 후 마지막 정리를 요청드렸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이십여 년 넘게 하신 직장 생활에 대한 소회 들려주세요."

"음... 우리 때는 머가 많이 없었고 너무 힘들었어요. 아무것도 몰라도 일단 배워야 되지, 생산직 애들 달래 가며 일 시켜야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다 해야 했어요. (엄마: 완전 군대식이었지.) 그래, 군대였어요. 새벽 세 시에도 나오라면 나가야지 주말에도 나가야 했죠.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어요. 주어진 일을 어떻게든 하면 되는 게 눈에 보이니까 보람찼어요. 내가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게 만들어줬어요. 그래서 한때 몸담았던 현대자동차를 아직도 좋아해요. 회사가 저만큼 성장한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마무리할게요. 긴 시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철컥거리는 녹음기 소리와 함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이제 다 됐어요' 하며 일어서던 나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마음이 멈칫했다.


"고맙다, 아들아."


Introduction of Song
The Beatles, Yesterday(Remastered 2015)

2000년 겨울, 나는 자그마한 테이프 하나를 샀다. 평소 같으면 신경 쓰지 않았을 뮤지션, 그러나 무시할 수 없었던 그 뮤지션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새천년을 맞아 나왔다. 2000년 이후 발매된 앨범 중 역대 최고 판매량을 보인 전설적인 앨범, 비틀즈의 '1'이었다. 2001년은 아직 테이프의 시대였다. CD의 시대였기도 했지만 고작 학생인 내게 허락된 가격은 테이프와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공부만 허용되었던 시절, 정말 신물 나게 들었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너무 많이 들어 더 이상 듣기 지겨울 정도가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정중히 물었다. 당신이 가져도 되겠냐고. 명반은 그렇게 내 손을 떠났다.


비틀즈는 아버지 세대의 초기 아이돌이었다. 현세대의 BTS 정도랄까. BTS가 현세대의 비틀즈라 칭송받는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 그 자식 세대가 BTS 음악 좋다고 듣는 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최근 TV프로 '음악의 희열 2'에 출연한 DJ 배철수가 그랬다. 음악을 통해 세대 간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아버지와 내가 그랬다. 그리고 유일한 음악 소통 채널이기도 했다. 비틀즈는 아버지의 (아마도) 첫 아이돌이었고 'Yesterday'는 그의 슈가송이었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친가로 가는 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이 노래를 통해 나는 비틀즈를 알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었으며 가장 많이 재생된 이 곡은 내겐 아버지의 노래이다. 아버지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리셨고 가장 많이 즐겨 들으셨던 노래. 아버지는 의도하지 않으셨겠지만 내게 그렇게 비틀즈를 알려주셨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게 비틀즈의 앨범 '1'을 드린 걸 아쉬워하지도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신 아들이 비틀즈를 좋아한다는 걸 당신께서도 은근히 좋아하지 않으셨을까 싶어 기분이 좋다. 테이프 드릴 당시만큼은 아니어도 언제나 건강하시길, 그리고 가끔 전화 상으로 당신 아들과 수줍게 얘기 나눠 주시길 당신 아들로서 바랄 뿐이다. 


덧붙일 곡은 'Love me do'이다. 앨범 '1'의 Side A 첫 곡이자 비틀즈의 첫 싱글 곡으로 내겐 앨범 '1'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테이프를 틀면 언제나 첫 곡은 이 노래였는데 가사가 쉬워 좋았고 존 레넌의 하모니카 소리도 좋았다. 당신도 비틀즈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The Beatles, Love me do(Remaste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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