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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Jul 21. 2019

사라진 우리 동네

Music: 두번째달 - 신수동 우리집

Essay #19


#동네 아이들

아직도 생각난다. 엄마가 무려 칠 년 동안 아빠의 월급을 꼬깃꼬깃 모아 손수 세운 집으로 들어온 첫날이. 젊었던 엄마의 손을 잡은 채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집 앞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소심한 아들이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자 엄마가 아이들을 불렀다.


- 야들아, 우리 어제 이사 왔거든. 아줌마가 주스 한 잔씩 주끄마. 얘랑도 친구 해줄래?

- 네!!!


그 길로 아들은 손쉽게 동네 개구쟁이 패거리가 되었다. 이후로 학교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작은 방에 가방을 던져두고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집 앞 동네 골목은 어디든 놀이터였다. 어떤 날은 집집마다 종이 딱지가 가득해졌다. 그러더니 어떤 날은 따조가, 또 어떤 때는 구슬이, 다른 어느 날은 고무 딱지가 불어났다. 아이들 나이가 한두 살 더 먹어 갈수록 딱지는 비비탄 총으로, 구슬은 RC카로, 고무딱지는 게임기로 바뀌어갔다. 새로운 하나가 등장하면 다른 하나는 어디 있는지 잊혀졌지만, 아이들은 오늘에만 살았다.


주말마다 동네 골목에는 운동회가 열렸다.

종목은 하나 아니면 둘 정도. 선정은 그때마다 지네들 맘대로. 할 건 많았다. 공이 있으면 축구나 피구, 공이 없으면 숨바꼭질부터 진돌까지. 일단 시작되면 동네가 떠들썩거렸다. 쉬는 시간은 오직 공이 집 담벼락을 넘어가든지 차 밑으로 들어가든지 혹은 난닝구 차림의 아저씨가 시끄럽다 버럭 할 때뿐. 끝을 알리는 신호는 노을 지는 저녁 하늘 아래 엄마가 부르는 아이들의 이름. 바닥에 넘어지고 구르느라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승자는 기쁨을, 패자는 아쉬움을 안고 각자 따뜻한 품에 안겼다.


#엄마의 아지트, ‘마당 패숀’

아빠가 출근하고 아들이 등교하면 엄마의 하루는 이미 절반이 지나간다. 하늘에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쯤이면 엄마는 집에서 퇴근한다. 엄마의 아지트는 지근거리 시장길 한중간에 자리 잡은 곳, ‘마당 패숀’.


세시가 지나갈 무렵쯤, 가게에는 전화벨이 울린다.

- 이모, 거기 우리 엄마 있어요?

- 그래, 엄마 있다. 바까 줄까?

- 저 그냥 그 짝으로 가께요.

- 오냐, 조심해서 온나이~


비린내 나는 시장길을 가로질러 가게로 들어서면 무수히 진열된 옷 사이 너머로 카운터가 보인다. 그리고 카운터 뒤 문안에는 엄마와 이모들의 잔치가 열린다. 이모들이 벌여 놓은 판에는 하루는 밥과 밑반찬이, 어떤 날은 화투가, 가끔은 마당 이모가 서울서 날라온 옷들이 펼쳐진다. 아들은 판 위로 쏟아지는 여인네들의 수다를 엿들으며 아는 척 모르는 척 눈치껏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면 판 위의 잔돈은 때때로 용돈이 되기도 해, 그 길로 시장바닥 어딘가에서 군것질을 즐기러 나간다.


#일출비디오

동네마다 그런 곳이 있다. 길을 알려줄 때 기준점 같은 곳. 우리 동네엔 일출비디오가 있었다. 이를테면 엄마가 짜장면 배달시킬 때나 지인을 부를 때, 집 위치를 알려줄 때면 늘 나오는 단어였다.


- 골목으로 들어오면 사거리에 일출비디오가 있고예 그 위쪽 올라가는 골목에 빨간 벽돌 이층집입니데이.


그곳엔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다. 장난기 많았지만 선했던 형. 때때로 비디오 빌리러 가면 ‘주야 이거 꼭 봐바라. 진짜 재밌데이’하며 침이 마르도록 권해 주기도했다. 가끔은 형의 손에 이끌려 비디오 집 안방까지 발을 들이기도 했는데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 보았고 ‘위닝 일레븐’도 처음 해보았다. 형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우리랑 놀아주긴 했지만, 점차 초딩 동생들이랑 놀아줄 시간은 줄어들었고 지나다가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로 되었다가 어느새 일출비디오와 형은 우리 동네에서 사라져 버렸다.




애들 소리로 넘쳐났던 동네는 한둘씩 아이들이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활기를 잃어갔다. 아이들이 훌쩍 커가자 부모들은 시나브로 동네를 떠나갔고 그 빈자리를 무당과 아이 없는 정체 모를 외지인들이 차지했다. 심지어 어떤 집은 비워둔 채 방치되어 길고양이 무리 집합소가 되어 버렸다. 시장바닥에 있던 엄마의 안식처도 마당 이모의 사정으로 얼마 가지 못했다.


동네 모든 꼬마의 인사를 받으시던 옆집 할아버지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기다랗고 검은 차와 함께 동네를 떠나셨고 홀로 집을 지키던 할머니는 작은 아들이란 어떤 아저씨의 손을 잡고 정든 집을 떠나셨다. 예의 발랐던 앞집 효주 형은 한 살배기 딸 하나 남겨둔 채 느닷없이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고, 이후로 앞집 아저씨의 너털웃음을 동네 그 누구도 더는 볼 수 없었다.


동네에 내가 알던 헌 건물이 하나씩 사라지고 높다란 원룸식 빌라들이 들어섰다. 땅 위를 비워둔 채 올라간 건물들 아래로 어둠이 드리워졌다. 어둠을 틈타 불알을 떼도 시원찮을 놈들이 조금씩 동네로 침투했다. 하릴없이 남은 주민들은 한밤에도 동네를 밝힐 가로등과 감시카메라를 이곳저곳 달 수밖에 없었다.


동네는 더는 어릴 적 따뜻한 정이 흐르던 그곳이 아니었다.

부모를 두고 난 그곳을 떠났고, 결국 내 주민등록증에서도 동네 주소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Introduction of Song
두번째달 모노로그 프로젝트 앨범 [Alice In Neverland], 신수동 우리집

사람의 온기는 공간의 숨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 머물지 않는 집은 생명이 꺼진 것처럼 쉽게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다. 동네도 마찬가지다. 골목 여기저기 사람이 머물지 않는 동네는 피가 돌지 않는 시체와도 같다. 어른들의 인사, 아이들의 웃음, 어르신들의 수다 같은 것들이 동네에 숨을 불어넣어 활기를 띠게 한다. 머무는 공간에 사람의 온기가 실려있고 정과 포근함이 깃든 곳,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살아있었다.


아직 그곳에 부모님이 계신다. 고향을 떠난 후로 이따금 안부차 들릴 때마다 동네는 낯설다. 분명 같은 곳인데 동네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가게는 사라졌고, 동네 주민은 바뀌었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골목엔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제 동네는 우리 동네가 아니었고 사라져 버렸다. 내 기억 속에만 남은 채.


두번째달의 음악, '신수동 우리집'. '우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예전 동네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곡이다. 회색빛 아파트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동네의 안락함이란 것이 있다. 성함은 몰라도 누구 집 아저씨, 누구 아줌마 하면서 어느 집에도 머물러도 되었던 너그러움, 잘못 날아간 공에 화분이 깨지고 창문에 금이 가도 단지 '이 놈!!' 한마디만 하시던 츤츤함, 저녁 무렵이면 골목 사이로 퍼지는 담벼락 너머 밥 내음 같은 거. 이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것들이 그냥 떠오른다.


두번째달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된 건 드라마 '아일랜드'를 통해서였다. 드라마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겐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서쪽 하늘에'란 음악에 듣자마자 바로 꽂혀버렸다. 다양한 악기를 이용하여 색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는 두번째달 만의 이채로운 색체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은 한 사람에게만 통했던 건 아니었던지 두번째달의 음악은 2005년 그해 상당수 광고의 BGM으로 사용되었다. 결국 두번째달은 정규앨범 1집 [2nd Moon]이 2005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받으며 평단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더불어 드라마 '궁' OST에 참여하게 되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 밴드원의 성향과 견해 차로 잠시 갈라서기도 했으나 2015년 재결합하여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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