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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Aug 18. 2019

쩔은 아침

Music: 은지원 - 만취 in Melody

Essay#20


- 으음...몇 시지?


침대 맡 널브러진 아이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켰더니 '9:12'이 보였다. 순간 심장이 벌렁했지만 이내 좀 진정됐다. 그 아래 보이는 '일요일'. 다행이야. 망한 줄 알았네. 나 집엔 어떻게 들어온 거지? 도저히 기억 안나는 그 생각의 답에 긴장감은 다시 온몸 구석구석 전해졌다.


도대체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편린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데 입에서 역한 냄새가 느껴졌다. 그래. 어제 그 술집 화장실에서 토하긴 했었지. 그건 기억나. 다른 애들 몰래 뱉고 왔고 애들도 그렇게 신경 안 쓴 얼굴들이었어. 근데 왜 이 똥내가 내 입에서 나는거야?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 일단 침대에 업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이 절로 머리를 감쌌다. 침대를 벗어나기 힘든 건 둘째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아파도 이렇게 아플 수 있나. 누군가가 내 뇌의 양측을 두 손으로 잡아 짓누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행성에 있는 듯 중력은 두 배, 아니 세 배로 느껴졌다. 으아. 거스르기 힘들다. 나약하다 나약해. 한심한 몸뚱아리에 한숨 한 번 쉬고 한 번에 일어섰다. 머리를 또 한 번 세게 얻어맞은 것 마냥 잠시 일어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장실로 들어서자 잔상 하나가 머리를 스쳐간다. 훌러덩훌러덩 허물 벗듯 옷을 하나하나씩 바닥에 패대기친다. 에고 안 춥니? 한겨울이야. 그러다 감기 들어. 그러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어어? 너 거긴 왜 들어가? 나 토할 거야. 끄억. 꾸웩.우~~~웨엑. 한참을 그러다 더 나올 게 없단 걸 인지했던지 물 내린다. 그리고 정갈히(?) 손을 씻는다. 그 상태로 마이 스윗 베드가 있는 방으로 주춤주춤 들어갔구나. 거기까지 떠올랐다. 왜 손만 씻은 거야? 입도 헹궜어야지, 등신아. 떠오른 기억의 단편에 한숨이 나왔지만, 그 덕분인지 속은 그나마 괜찮았다. 당장 무얼 먹기는 무리였지만. 치약 향도 맡기 싫어 물로 입 안을 가글만 했다.


화장실을 나서자 싱크대 위에 곱게 놓인 웬 컵라면 하나가 보였다. 뭐야? 저건. 언제 사온 거지? 아... 술 마시고 들어오면 항상 하는 버릇 중 하나, 편의점에 들려 라면 사기. 이렇게 취하면 보통 숙취에 쩔어 다음 날 집에서 옴짝달싹 안 할 걸 아니까 어느 순간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그렇게 정말 정신 놓고 취한 순간에도 나는 누군갈 챙기는구나. 그 누군가가 이번엔 나인 거고. 갑자기 다른 기억 하나가 흘러들어왔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내가 술집을 나선다. 술을 깨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좋았고 조금 걷다 들어가야지 한 것도 좋았는데 걷다 보니 근처에 있던 이마트였다. 마트 끝날 시간은 좀 남았고 나도 이만큼 취했으니 상쾌환 몇 개 사서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같이 먹어야지. 이러더니 세네 박스를 사서 멀쩡한 척하며 술집으로 되돌아갔다. 상쾌환 사온 내 모습을 본 일행들의 표정은 ... 기억 안 난다. 정말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 그 생각에 카드를 찾았다. 어라, 이거 내꺼 아닌데? 이게 왜 나한테 있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검정 코트가 보였다. 지갑 저기 있을 거야. 손을 뻗어 코트를 잡아들었다. 묘하게 이상했지만 코트 여기저기 뒤져보았다. 헉! 지갑이 없다. 없어졌다. 그래. 니가 드디어 일 쳤구나. 지갑을 잃어버렸구나. 그럼 그렇지. 몇 년만의 블랙아웃인데 아무 일 없는 게 말이 안 되지. 현타 오는 상황에 괜스레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갔다. 앗, 웃을게 아니구나. 카드 정지부터 시켜놔야겠다. 내 폰 어딨어?


- 때르릉~ 때르릉~~~


갑자기 방에서 알람이 울린다. 저 노무 소리는 누가(내가) 설정을 저따위로 했는지 그냥 놔두기엔 너무 괴롭고 시끄러워 머리를 부여잡고 방으로 달려가 알람을 껐다. 그제야 겨울의 한기가 느껴졌다. 편한 옷 대충 주섬주섬 걸쳐 입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어떻게 들어온 거야? 애들은 잘 들어갔나? 아이폰을 들어 우선 카톡부터 열었다. 세상에나... 웬 메시지들이 이렇게 많이 와 있지?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크게 세 종류였다. 잘 들어갔냐는 안부인사, 깨면 카톡 하라는 요청, 그리고 카드 주인 녀석의 상냥한 상황 설명이었다. 일단 무사귀환을 몇 개의 톡으로 알리고 카드 주인에게 전화했다.


- 나 어떻게 들어간 거야? 기억이 하나도 안나.

- 형 어제 만취해서 우리가 돌려보내려 택시 불렀는데 지갑 없어졌다고 그래서 일단 제 카드 빌려드린 거예요. 

- 그래서 니 카드가 나한테 있었던 거였구나. 미안하다.

- 근데 지갑 형 가고 나서 우리가 찾았어요.

- 어디서?

- 형 코트 블랙이죠? 입고 간 코트 봐바요. 그거 XX 거예요.

- 머???!!!!

- 착각할만했던 게 다들 검정 코트 입고 와서 형이 헷갈렸나 봐. 안 그래도 취했는데. 아무튼 형 코트는 그래서 XX가 입고 갔어요. 지갑도 같이요.


깨질 듯 아픈 머리에 피가 몰리자 뇌가 빠르게 울렸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엔 택시를 불러준 녀석이 끝나지 않은 비보를 전해줬다.


- 형, 택시 아저씨가 돈 보내달래요.

- 왜? 택시비 결제한 거 아녔어?

- 그거 말고. 청소비. 형이 택시에다 토했대.


별 거 다했구나, 너.

미친다 정말, 너.


갑자기 머리가 울린다. 민망한 진실에 피가 쏠려서.

갑자기 몸이 무겁다. 밝혀진 사실에 긴장 풀려서.

갑자기 속이 쓰린다. 부끄러운 현실에 할 말 없어서.



Introduction of Song
Movement Crew 합동 무대(만취 in Melody + Rush + 고집쟁이 + Good Life) @ 윤도현의 러브레터

Tiger JK를 상당히 좋아한다. 그의 음악, 그의 성격, 그의 철학은 아직도 무척 매력적이다. 그는 한국 힙합씬에서도 이제 올드 스쿨 스타일 힙합 뮤지션이지만 아직도 상당히 매력적인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은지원과 함께라니!!! 2003년 당시에는 상당히 이색적이고 어색한 조합이었다. 젝키를 좋아하긴 했지만 은지원이 힙합이라니? 은지원 정규 3집 [만취 IN HIP-HOP]은 물음표만 가득한 음반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이 다 그런 반응이었다.) 


대중의 반응은 역시 의외였다. 문희준이 락 음악을 보여주다 가루가 될 만큼 '무뇌충'으로 까여 은지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했지만 든든한 뒷배(a.k.a. Tiger JK)와 탄탄한 랩 실력, 그리고 중독성 있는 음악으로 끝내 리스너들의 인정을 받았다. 물론 이후 '만취 in Melody'만큼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노래는 없지만 '1박 2일', '신서유기'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설치다가도 무대에서 래퍼가 되는 그가 이젠 어색하지 않다. 은지원 스스로도 언젠가 한 번 '만취 in Melody'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전환점을 마련해준 계기가 된 노래였으니.


사실 나의 이번 이야기와 이 노래는 제목 빼곤 연관성이 없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만취'가 아닐까 싶다만. 생에 몇 없었던 만취한 날들 중 하나가 바로 작년 연말이었고 그게 바로 이 사건(?)이었다. 하아... 취해도 이렇게 취한 적은 손꼽을 정도였고, 기억 자체가 날아간 것도 몇 없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다음날 전날 만취에 뒷수습하느라 정신없었던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카드 돌려주고 바뀐 코트 교환하러 가고, 택시비까지 계좌이체하고... 지금도 생각만 해도 표정이 찌푸려진다. 으으~. 글을 적는 이 순간도 이때를 돌아보면 어이없어 웃게 되지만 이때의 나는 많이 힘들었다. 여러모로. 머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야 하고 넘어갈 거지만 다시는 만취하지 않으리. 다시는 섞어먹지 않으리. (이러면서 또 나는 술을 쳐 마시겠지. 껄껄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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