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비친눈 Jan 11. 2019

안타깝고 아까워 더 아끼는 노래

첫 번째 pop 이야기 :  Wish you're my girl

Pop Memory #001


대학 첫 학기는 즐거웠다. 연애 빼고. 원해서 간 대학은 아녔지만, OT를 가지 않았음에도 좋은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났다. 재수 때 친해진 친구들과도 대학은 다 달랐지만 곧잘 각자의 바쁜 일상에 틈을 쪼개어 같이 어울렸다. 신촌, 홍대, 안암, 대학로 어디든 가리지 않고 놀러 다녔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대학 생활의 낭만 중 핵심인 연애는 없었다. 남중-남고-공대. 거기다 외동에 썩 상태 좋지 못한 몸뚱이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도 벅찼으니 여자는 1도 잘 몰랐다. 흔한 변명이자 핑계. 그래도 그 와중에 한 여자가 내 마음을 두들기긴 했었다.


그 해 6월 그녀를 처음 알았다. 상암 월드컵경기장. 그 날 그곳에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었다. 6월 초의 날씨치곤 그 날은 더웠었다. 경기장이 2002년의 흥분을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달아올랐다지만,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렸다. 같은 지역 다른 대학에 다닌 친구 녀석 하나와 함께 월드컵경기장 역 부근에서 서성였다. 우리는 그날따라 늦는 여사친을 기다렸다. 


"얜 왜 이렇게 늦어?"


그렇게 투덜거리는 순간, 에스컬레이터로 서서히 올라오는 여사친 옆의 그녀를 처음 보았다. 두근거렸다. 월드컵 4강 축구 영웅들을 늦게 본다는 짜증은 재빨리 증발했고, 손에는 뜬금없이 땀나기 시작했다. 


"미안. 우리 늦었지?"

"미안하긴. 아직 경기 시작 안 했어. (바로 옆을 보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때문에 늦었어요. 제가 여기서 제일 멀어서."

"아뇨, 괜찮아요. 경기 시작까진 아직 여유 있으니 천천히 가도 돼요.(웃음)"


추억은 미화된다지만,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의 날 미화시킬 수는 없다. 꽤나 서툴었을 거다. 20대 내내 그랬으니까. 30대에는? 경기 내내 우리 넷은 '대! 한! 민! 국!'을 외치며 방방 뛰었고 난 경기는 안중에도 없이 그녀와 말 한마디 더 나눠볼 생각만 가득했다. 어떤 맥락에서 무슨 핑계를 어설프게 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리고 투박했겠지만 기어코 번호를 교환했다.


기말고사를 눈 앞에 두고서도 마음은 항상 그녀에게 머물렀다. 과목마다 번갈아가며 쏟아내는 과제 더미와 그 너머 줄지어 서있는 시험들. 1학년 1학기였기에 망정이었지 그 정신으로 잘도 그 기간을 흘려보냈다. 그 와중에도 문자로 틈틈이 어설픈 호감을 그녀에게 보냈고 시험이 끝나자 쿨한 척 약속을 잡았다. 집으로 내려오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학점을 핑계로(?) 기숙사에서 7월 한 달을 버티며 그녀와 만났다. 지금의 나라면 몇 번 잴 거 없이 적당한 타이밍에 그녀와의 관계를 진전시켰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럴 경험도 용기도 없었다. 수차례 좋은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뭘 잘 몰랐던 나는 7월의 그녀를 그렇게 놓치고 8월의 여름을 고향에서 보냈다.


결국 뜨뜻미지근한 내 행동은 화를 불러왔다. 그 해 가을은 참 좋았는데 내 몸은 그렇지 못했다. 고3의 기억을 '고통'이란 한 단어로 만들어버린 '아토피'가 온몸으로 다시 퍼져버린 탓이었다. 늘 그랬다. 온몸에 화마가 번진 듯 그 녀석이 나를 뒤덮으면 여유는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다. 여유가 사라지고 꼴이 엉망인 채로 그녀와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럴 깜냥이 없었다. 사귀자는 그 한마디 제 때 못해서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학교와 기숙사, 가을 학기 내내 그 두 군데에만 서성거리던 내 귓가에는 앤드(AND)의 <Wish you're my girl>이 떠나질 않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원망했고 자책했다. 스물한 살의 나는 그렇게 바보처럼 안타까웠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리고 이듬해 2월이었다. 조용한 내 휴대폰에 문자 하나 찾아왔다.


'어떻게 지내? 그동안 연락이 없어 궁금해서 연락했어.'


나는 한참을 멍하니 휴대폰 화면만 바라봤다. 망설임 끝에 답장 하나 보냈고 얼른 낫길 빈다는 그녀의 답장으로 우리는 끝을 맺었다.




Song Introduction


바보 같은 스물한 살의 나만큼이나 안타까운 가수 하나가 있다. 앤드(AND).


한 장의 앨범과 두 장의 싱글, 딱 거기까지만 자신의 음반을 발매하고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있다. 참 좋은 앨범이었는데, 달랑 한 장의 정규 앨범만 내고 자취를 감춘 그가 아쉽다. 그래서 나는 그가 슈가맨에 나오길 간절히 바랬다. 그의 1집 앨범 [앤드]를 들어보면 감성은 숨길 수 없는 2000년대 중반 딱 그때 그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오지만 전곡 모두 완성도 높은 세련미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노래가 바로 이 곡,  <Wish you're my girl>이다. 


느낌 있는데 시절이 시절인지라 지금은 좀 촌스러운 뮤비

처음 들으면 왠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에 들었을 때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작곡자가 바로 조규찬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유심히 들어보면 코러스가 상당히 풍성한데 이는 전형적인 조규찬 음악의 특징이다. 이 노래 이 앨범이 나온 지 벌써 16년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렇게 촌스럽게 들리진 않는다. 니가 아재라 그럴 수도... 한동안 아는 사람만 기억하는 노래였는데 2015년 삼시 세 끼에 잠시 흘러나와 SNS 상에서 한동안 언급되기도 했었다. 유희열은 네이버 뮤직에서 자신의 명예의 전당에 이 노래를 올리며 '이 노래가 왜 안 떴을까'라 하기도 했고, 자이언티는 멜론을 통해 이 노래가 자신의 인생 BGM이라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 곡 외에도 몇 안 되는 앤드(AND)의 노래 중 두 곡을 추천한다. 


뉴욕의 풍경을 담은 싱글 앨범의 아트웍


<Take your time>는 현재 기준으로는 그의 마지막 싱글 곡이다. 사실 추천할까 망설였다. 앤드(AND)를 기억하는 사람도 적으니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곡이기도 했고, 너무 내 취향이기도 해서다. 하지만 멜론을 비롯한 온라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들을 수 있으니 <Wish you're my girl>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커피프린스 1호점 OST의 수록곡 <For a while>이다. 이 곡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한 장면에서만 나오는데 노래가 좋고 목소리도 익숙해서 가수를 찾아봤더니 'MNI 민재'란다. 근데 알고 봤더니 그가 앤드(AND)라네??!!! 

그렇다. 잠시 바꾼 활동명이란다. 본명은 김지환.  앤드(AND)를 아는 사람도 적거니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조차 알기 힘들긴 하다. 그러고 보니 이 곡도 벌써 12년 가까이 되었다. 그야말로 아재 감성. 아무튼 12년 전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기억날 법한 곡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배경의 <For a while> 뮤비




작가의 이전글 사막과 달과 별, 그리고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