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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비친눈 Jan 05. 2019

사막과 달과 별, 그리고 나

세 번째 재즈이야기 : A Mid Summer Night’s Dream

Jazz Memory #003

그곳에는 노랑과 주황과 연한 파랑만이 있었다. 태양은 아직 동쪽으로 치우쳐 있었지만 사막을 강렬한 원색의 주황빛으로 달구기에 이미 충분했다. 사막의 색을 품고 태어난 노란 낙타들은 낯선 타국의 여행자들을 태운 채 줄지어 사구 한 등성이씩 천천히 넘어갔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사막의 풍경에 탄성이 탄식으로 변할 무렵, 대열을 이끄는 후세인은 우릴 향해 손 흔들며 소리쳤다. 후세인은 웃는 얼굴로 소리치며 걸음을 멈췄고 그가 가리키는 손 끝에는 평평하고 넓게 패인 휴식처가 있었다.  


어제의 사막을 즐긴 금발의 여행자들이 우릴 반겼다. 어디서 왔냐는 그들의 의례적인 말에 우리는 한국과 일본에서 왔다고 화답했다. 사막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막 끝낸 그들 중 하나가 내게 한마디 남기고 떠났다.


"Have a nice trip! You will never forget tonight."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막엔 기적처럼 비가 내렸다. 얼마간 추적추적 내린 비는 뜨거웠던 사막의 열기를 순식간에 식혔다. 그리고 맑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기대한 여행자의 마음도 식혔다. 뒤늦게 베이스캠프로 온 호스트 알리가 젖은 내 마음을 노련하게 눈치채고 더듬더듬 영어로 말했다.


"너희들은 운이 좋은 거야. 이 비는 여기선 일 년에 두 번 정도밖에 안 온다구. 사막에서 이런 광경은 보기 드물어."

"하지만 우린 밤에 별을 보고 싶어. 여기 별 보러 왔는데 오늘 밤 못 볼까 걱정돼."

"걱정 마. 곧 구름이 걷힐 거고 넌 분명 여기서 은하수와 별을 보게 될 거야. 내가 보장할게."


달래는 말인 줄은 알았지만 거짓 없는 알리의 그 웃음과 말투에 나는 쉽게 한숨 놓았다. 이어서 알리는 이 곳이 오아시스이고 불과 몇 년 전까지 물이 있던 곳이라 말했다. 지금도 지하에는 적지 않게 물이 남아있어 끌어올려 쓴다고 알려줬다. 비 온 뒤의 사막의 풍경도 꽤 매력적이라는 말과 함께 베이스캠프 뒤로 높이 솟은 모래언덕 위로 올라가 사막 전경을 보길 권유했다.


보기드문 비온 후 사막 전경 @ 모로코 메르주가 부근 사하라 사막 어딘가


높이가 200m 정도 된다는 언덕에서 바라본 사막은 어느 사진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직 하늘은 회색으로 뒤덮였지만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내리는 햇살에 사막은 서서히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먼 타지에서 만난 인연들이 제각기 각자의 시간을 갖는 사이, 나는 언덕 위에서 멍하니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밤이 되었다. 어둠이 내린 검은 사막 위에는 드문드문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밝은 보름달 하나 떠있었다. 그 달빛 아래 북아프리카 유목민 베르베르 족의 후예들의 융숭한 대접이 이어졌다. 모로코 전통음식 타진을 먹으며 그들이 들려주는 먼 옛날 선조들로부터 이어진 소리를 들었다. 주문이라도 외웠던 걸까. 그 노래의 리듬에 여행에 지쳐있던 몸이 깨어났고, 그들의 박자에 우리의 몸도 반응했다. 흔들린 몸에 깨어난 흥을 달래기 위해 누구 할 것 없이 서로가 고이 모셔온 술을 꺼냈다. 인생 단 하나의 접점에서 더 이상 이어지질 않을 인연의 삶에 축복 빌어주며, 모래 위 소소한 차림상 위로 술잔이 오갔다.


어떤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구름이 달을 걷어낸 밤하늘 공백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었다. 별똥별은 그 사이로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새도 없이 이따금 떨어졌고, 은하수는 은은한 빛을 내며 고혹적인 자태로 유유히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모래는 비록 빛을 잃었지만 누운 내 몸 뒤에서 보드랍게 날 감싸 안아주었다. 달콤한 레드 와인에 취하지 않았어도 사막 밤하늘의 정취에 취기를 느끼는 정적 사이로 내 아이폰에서 Elyon의 <A Mid Summer Night’s Dream>이 흘러나왔다.




Song Introduction

Elyon은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재즈힙합 프로듀서다. 그의 음악 활동은 2011년 6월부터 시작되었으며, 2016년 여름 한국 ‘친구’들만을 위해 미발매곡을 하나의 컨셉으로 묶은 앨범 [Chingoo]를 발매하였다. 그중 <A Mid Summer Night’s Dream>는 제목처럼 무더운 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차분하고 감미로운 곡이다. 2년 전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밤하늘을 감상하며 들었던 그의 곡은 내 기억 속 한 단편 영화의 주제곡이 되었고,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때 그 순간 달빛이 사막을 은빛으로 물들이던 그 사막 한가운데로 되돌아간다. 이 곡 외에도 <Moon Light Romance>와 <Roses>도 좋아하는데 모두 늦은 밤 감성을 꽤나 자극한다. <Roses>는 사람들 일부는 어디서 들어봤는데 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데 사실 힙합 비트 위에 재즈 명곡 Misty를 샘플링한 곡이다. 개인적으로 앨범 [Chingoo]의 전곡 모두 들어보길 추천한다. 특히 일본 재즈힙합의 전설 Nujabes를 좋아한다면, 이 앨범과 Elyon이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의 소개에도 자신의 음악(beat) 상당 부분을 Nujabes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Elyon도 Nujabes을 따라 재즈 명곡을 샘플링했다카더라. 


<A Mid Summer Night's Dream>, Elyon


<Roses>, Elyon


참고로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온라인 음악 서비스 bandcamp를 통해 그의 모든 앨범이 공개되어 있으며, 이 사이트를 통해서 스트리밍으로 무료 음원 감상이 가능하다. 유튜브에도 있지만 Elyon의 모든 음원이 있진 않다.

아래로 들어가면 bandcamp의 Elyon의 모든 앨범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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