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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 Dec 14. 2022

자신에 대한 확신이 맹신은 아닐까

이것도 나 저것도 나

강자는 추앙하고 약자는 증오하는 양면적 성격을 새도 마조히스트적 성격(sado-masochistic character)이라 한다. 이러한 새도 마조히스트적 성격의 대표적인 것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에게서 볼 수 있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의롭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고귀함이 있다 확신하며 살아간다.

막상 현실에 부딪쳐 보면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를 배려하기보다는 외면한다. 그리고 강자를 부러워하고 강자들의 부당한 행위에 비난보다는 묵인을 한다.


나 또한 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당연히 올바른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 거리를 고수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 출퇴근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쳐가고 있다.

붐비는 대중교통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려 애를 쓰다 보니 옆사람들이 사람이 아닌 짐덩이로 보인다.


건장한 놈이 밀어붙이면 어쩔 수 없이 밀려나가고 약한 놈이 밀면 같이 밀어붙이면서 버티려 바둥거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간혹 나보다 힘이 미약하다 싶으면 힘을 써서 상대의 공간을 들키지 않게 조금씩 빼앗았다. 어떤 날은 상대가 힘들어하는 줄 알면서도 공간을 비켜주지 않는 옹졸함도 보였다. 그제야 첫 출근날 지친 그들의 모습과 배려 없는 행위들이 드디어 나에게서도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쓴웃음과 비참함과 피로가 밀려온다. 같은 피해를 입어도 약자에게는 분노가 있는 반면, 강자에게는 분노가 없었다. 분노는 피해를 준 상대에 대한 감정이다. 그런데 강자에게 피해를 받았으면서도 감정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의식적으로 떠올렸을 때에야 인식이 되었다. 이것이 새도 마조히스트적 성격의 양면성과 비슷한가?! 나에게도 히틀러 같은 성격이 존재하는 것인가?!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이 지나친 비약이라 할지 몰라도 충격은 가해졌다.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상하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온다. 우짜면 좋을까나... 내가 생각한 내가 내가 아니라면 진짜 나는 무엇일까. 당황스럽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다른 나를 만들어서 그것을 나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이럴 때만 내가 아닌 것일까. 두서없는 의구심들이 들끊기 시작한다.


다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도 나고 내가 생각한 나도 나일 수 있지 않은가. 어찌 하나로만 나를 판명할 수 있을까. 드러내 놓지 못해서 그렇지 나라는 수많은 내가 있지 않은가. 새삼스러울 것 없지 않을까. 남과 다른 어쩌면 더 나은 나라고 생각하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나에 대한 정의가 흔들리니 반짝거리던 나의 별이 사라진 느낌이다. 어찌 보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인지 모른다. 그러다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고, 의식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의식된 것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잔소리하던 딸의 투덜거림이 생각난다. 상대의 말을 제대로 다 듣지 않았으니 오해가 생기고, 이해가 안 되니 혼자 화를 내고, 다 듣지 않아서 상대의 다른 말들을 기억을 못 하니 엉뚱한 소리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불통속에서 그것이 상대 책임이라도 되는 양 그래도 자기가 옳다고 우기면서 화를 내어 소통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나이 들어서 그런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고 오지게 밀어붙인다. 할 말이 없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 되고 오판이 된다. 그것을 본인만 모른다.


생각속에서 정의로운 자라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맹신은 아닌지 고려해 볼 일이다. 현실에서 본 이율배반적인 나의 행위를 나와 분리시켜버리거나 묻어버리고 싶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모순적 행위에 대해서 나이라는 핑곗거리를 대어서라도 용납하고 잊어버리고 싶다.

혹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쉬이 용납이 될까?


잘 듣자. 잘 보자. 끝까지 듣고 보자. 중간에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자.

나를 포장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자. 남들과 다르지만 남들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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