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다
앞으로 살아갈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 본다.
그런다고 남아 있는 돈이 더 불어나지도 않는데 세어 보고 또 계산해 보아야 안심이 좀 된다.
백수생활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실업 급여와 퇴직금으로 한 달이라도 더 늘여 생활하려고 아끼며 살고 있다.
2024년 올 한 해가 한 달여 남았다.
긴 것 같아도 길지 않은 대책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하지만 자유롭고 만족스럽다.
백수의 삶이 길어지니 그에 맞게 적응하고 살아나가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한 달 한 달의 급여로 살아가는 생활에서 벗어나면 당장 생활이 파괴될 것 같았는데 생활이 나름 이어지는 것이 묘하다.
떠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여행이듯이 이 또한 방식을 바꿔보아야만 알 수 있는 불안이었다.
살아보지 않은 생활방식 때문에 불안하여 감히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알던 방식으로만 살다 보니 안정은 되지만 재미가 없었나 보다.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니 또다시 쳇바퀴 돌듯 살고 살고 있다.
그래도 내가 주도하고 있으니 좀 더 자유롭다.
나한테 준 이 시간을 나한테만 써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하는 내 시간을 나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도록 단련시키는 것도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시간만 주어지면 나를 위해 온전히 쓰면서 만족하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시간을 가졌다 생각하니 나를 위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듯 시간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져 초초해지고 당황스럽고 불안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나한테 분배하려고 노력 중이다.
책을 하나 읽어도 시간 절약적으로 읽기보다는 더 읽고 싶어도 접어놓고 음미하며 생각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져 내 것 화 시키는 작업을 하니 제대로 책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너무 무거워 읽지 못한 책도 도전하고 있다. 그중 요새 뜨고 있는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어제는 [소년이 온다]를 3일에 걸쳐 나눠 완독 했다. 이제부터는 필사를 하며 음미하려 한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려 한다.
작가는 광주사태의 아픔과 회한과 고통과 공포와 폭력을 희생자로서 그려낸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그려낸 것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들고 다시 읽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런 작가의 묘사가 나의 내부에 켜켜이 숨어 있는 공포와 회한과 아픔을 정리하는 데 용기를 주고 있다. 그렇게 내가 회피해 왔던 감정들을 정리해야 한발 한발 내 발걸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3권이나 구매해 쌓아놓고 있다.
읽을 책이 많아져 부자 같고 새로운 친구들 같고 행복하다.
어쨌든 백수의 생활에 적응하여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니 나의 삶이 즐거워진다.
백수생활 잘하고 있다고 어디서 돈을 주면 좋겠다는 염치없는 생각에 혼자서 키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