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다

나의 속도에 맞추자

by 오순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혼자인 적이 없었다.


같이 있어도 어차피 혼자이기는 마찬가지이나 집에 누군가 있고 없고는 다르다.

각자 자기 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각자 혼자이지만 혼자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에 들어올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 혼자라는 생각이 들며 엄청 심심해서 여기저기 언제 들어오냐며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 밖에 있는 게 가족을 귀찮게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인적 없는 산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이다.

인적 없는 산길을 가다 누군가 나타나면 낯선 그 사람이 무섭다.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엄청 반갑기도 하다. 이 이중적인 감정은 본능과 사회성 때문인가 싶다.


두 달 뒤에 난 홀로 살기를 하게 된다. 그 적막감이 조금 실감 난다.

설렘도 조금 있긴 하나 외로움을 잘 견뎌낼지 모르겠다.

항상 가족들과 복작대며 살아왔다.

그렇게 가족을 부양하면서 지쳐갈 때 조용히 나만을 위해 한 달 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살아봤으면 했었다.


예전에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에서 엄마가 방을 얻어 나가 매일 잠을 달게 자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만 조금은 집안일에서 해방되도록 배려받는 이야기이다. 많은 엄마들이 공감했던 부분이다.


자식들이 결혼하여 독립하고 해외로 살아보려 나가고 이혼도 하여 난 조금 일찍 혼자 살게 된 것이다.

나이 들면 어차피 요양원 신세 지기 전 마지막 노년은 혼자 살게 되어 있다.

그동안 혼자이기를 퍽이나 소원했는데 막상 품 안이 텅 비어 버리니 무엇으로 그 훈훈함을 채워갈까 싶다.

과연 정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지 않고 나를 위해 즐겨 살 수 있을까.

혼자 거처하는 그 적막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하다.


미리 연습하듯 그 적막함을 그려보고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다.

혼자일 때 따라오는 그 적막함을 마주해 본 적이 없으니 지레 겁먹지 말고 마주해 보자.

고통도 마주하고자 하면 작아지고 견딜 만해지고 대책도 생기지 않던가.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무력해지고 무능해지는 노화, 그 때문에 자신에게만 집중해도 모자라다는 것을 늙어서야 알게 되었다.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를 어딘가에 잃어버렸는지 점점 이기적인 마음만 커진다.


자기를 먼저 이해하고 배려받고 싶은 무력한 공포가 염치를 모르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아하고 상냥하게 여유롭게 늙어가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닮아가는 이 이기심은 아마도 두려움 때문일 거다.

죽을 때 죽더라도 당장 죽지는 않는다는 마음으로 자신과 맞서면 두려움에 휘말리지 않고 통제할 수 있다.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뒤늦게 수영을 시작했다.

물에 대한 공포증이 그리 큰 줄 이전에는 몰랐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짓(수영)을 하고 있단 말인가'하며 무서운 수영을 그만두고 다른 운동을 하고 싶었다. 걷기는 무릎 관절이 너무 아프고 달리기는 더욱 안 되고 요가는 점점 더 힘들고 이래저래 거부하다 보니 그러다가 방안에 누워 눈동자만 움직이는 내가 떠오른다.


'그러지 말고 견뎌보자. 물 공포를 극복해 보자. 느리더라도 수영을 배워보자.

이번에 배우지 못하면 평생 수영 못하고 갈지 모른다.' 등등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남들보다 몇 배나 느린 속도로 물의 공포증을 줄여가며 독학하듯 꾸준히 수영 연습을 하였다.

수영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바닥을 헤매었다.


몇 달이 지나자 체력도 올라오고 물에도 뜨고 레인의 깊은 곳에서도 수영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자유형 수영을 하게 된 날 지인들에게 알려 축하를 받았다.


이렇게 수영을 나의 루틴으로 섭렵했듯이 또 다른 것들을 현재의 나의 속도에 맞게 하나씩 맞아들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감도 조금씩 늘어가고 사는 것이 재미있어 적막감은 저만치 뒤로 밀려나갈 것이다.


혼자 사는 루틴을 만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운동도 하고 책도 본다. 글도 쓴다. 그림도 그린다. 사진도 찍는다. 할 게 너무 많다.

내 속도에 맞추니 하고 싶은 것이 넘쳐난다.


오늘 수영은 배영에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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