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지 않겠다
드디어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심호흡하고 그러고도 읽기까지 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치 험준한 산을 등반하는 첫발처럼 첫 장을 넘기니 생각보다 잘 읽고 있었다.
읽다 보니 사건 속에 내가 있는 듯 그들과 함께 현장 속에서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떠한 변명이나 어떠한 포장도 없이 그대로 그곳에서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합류되어 그들이 되어 있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을 마주한 한강 작가의 소설이다.
그 광주의 아픔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궁금했으나 감히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를 보면 그 속에 그들의 고통이 난무하였고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의 절규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또 다른 아픔만이 재연되는 듯하였다. 그 많은 고통과 공포와 폭력들이 어지럽게 널리고 압박해 와 피하고만 싶었다.
외면했던 무겁게 가라앉은 그 고통들을 덜어내고 싶어서 자꾸만 그쪽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읽고 무언가 거부만 하던 고통을 펼쳐서 나란히 옆에 놓고 볼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이탈리아 문학상 말라파르테상 수상소감에서 작가는 말하였다.
"존엄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든 장소, 모든 시대가 광주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나를 위해 쓴 게 아니며 단지 내 감각과 존재와 육신을 죽임을 당한 사람, 살아남은 사람, 그들의 가족에게 빌려주고자 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잊어서도 아니다.
쉬이 내뱉은 그들의 아픔이 미라처럼 박제되어 장식용으로 될까 해서이다.
그 폭력들이 가십거리로 끝나버릴까 싶어서이다.
그들의 존엄이 두 번 세 번 훼손당할까 불안해서이다.
이젠 조금씩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그들은 거기에 있었고 나는 그곳에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곳에 폭력이 가해졌다.
공포와 두려움과 고통이 그곳을 장악했고 그것이 스멀스멀 가까이 또는 먼 곳까지 퍼져나갔다.
본능적으로 그들과 상관없다는 듯 고통을 피하고 싶었고 공포를 잊고 싶었다.
그렇게 거리 두기로 안전을 꾀하였다.
비겁했고 변명으로 살아갔으나 같은 아픔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텼으나 외면이 더 큰 가해였다.
안전지대는 없다.
외면하지 않고 그저 마주하고 같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