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자
눈이라도 올 듯 흐릿하고 어둡다.
이런 날은 온도와 상관없이 왠지 냉기가 더 파고드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이불속에 더 깊이 파묻히게 된다.
어쩌다 밖에 나가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활동하고 있어 놀라게 된다.
나만 날씨에 좌우되는 건가.
저들은 날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패배감이 든다.
같이 산책하고 있는 저 강아지들도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날씨에 움츠린 나만 바보인가.
방 안에서 온갖 세상 걱정 다 끌어모은 자석처럼 무거워진 몸을 뒤척이기도 힘들다.
내가 이러려고 연휴를 낸 것이 아니다.
분명 조용한 이 시간에 무언가를 해내려고 했었다.
하나의 생각이 그다음 생각을 이끌었다.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끌어냈다.
점점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가면서 어디선가 천방지축 생각들이 무작위로 끼어들었다.
손쓸 새도 없이 생각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뒤죽박죽이 되었다.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생각들에 끌려다녔다.
어떻게 마련한 시간인데 이런 잡생각들로 없애버리다니.
뒤늦게 시간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을 알고 탓해 보았자 헛일이다.
어디서 그 많은 생각들이 나타난 것일까.
지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생각들이 내 것일까.
생각들의 생각일까.
생각은 분명 내 속에서 나왔는데 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 그 내 것 같지 않은 그 생각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 나타날까.
나타나면 통제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자 했던 생각을 혼란 속에 빠뜨리는 그 생각들은 나의 것인가.
내가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생각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생각과 나는 무슨 관계인가 주종 관계인가 평등관계인가.
어쨌든 항상 되풀이되는 이런 훼방꾼들을 정리 정돈할 수는 없을까.
그 방해꾼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
오늘 나타난 방해꾼은 저번에 나타난 방해꾼들과 비슷한데 또 다르다.
가나다라 순으로 정리가 될까.
색깔별로 아니면 연대별로 시간별로 아니면 친밀도로 구분이 될까.
생각들이 좋아하는 것을 던져주면 조용해질까.
그 많은 생각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간혹 안다 해도 그 많은 것들을 더 추가해서 더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없다.
베란다 창가에 햇살을 쪼이며 졸고 있는 나의 고양이는 생각들이 없는 듯하다.
한두 가지 생각으로 편하게 살고 있는 그의 내공이 부럽다.
좀 쉬자.
잘 때까지 꿈속에 들어와 방해하는 것은 너무 하다.
평생 생각들에 끌려다니며 삶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지쳐서 내버려 두면 어느 순간 생각들이 조용해진다.
사라지지는 않지만 조용하니 좋다.
그 시간들을 길게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