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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의 피로

가족끼리

by 오순

손주와 두 번째 만남을 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꼬물꼬물 한 그 모습이 보고 싶다.

첫 만남은 생각 없이 보러 갔다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또 보러 갔다.


반나절 아기 보고 와서 삼일을 '아이고 힘들다'를 외쳤다.

아들도 우리가 가고 난 뒤 엄청 피곤하였다고 먼저 말해주니 나도 그랬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서로 힘이 드니 방문의 간격을 두기로 합의를 막연하게 하였다.


아들 내외가 아이 생기기 전에 그들의 몇 시간 되지 않은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가고 나면 떡실신되어 누워 있었다.

그동안 서운해할까 봐 말을 못 했는데 이번에 우리가 방문하면서 아들 내외도 느꼈는지 말해주어서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밖에서 만나고 집으로 손님 초대를 거의 하지 않는 요즘 시대의 분위기이어서 인지 별일 아닌 가족 방문에 이런 피로가 올 줄 몰랐다.

집은 이제 같이 사는 식구들만의 쉬는 공간이지 초대나 방문의 공간이 아님을 체험했다.


아무 때나 아기 보러 오라던 말이 이젠 쉬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젠 어쩌다 한 번 들러도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니 나도 부담이 없어졌다.


남남끼리 만나 가족이 되어가는 것도 힘든데 따로 사는 가족끼리의 만남과 관계는 더욱더 배려하고 오해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

혼자만의 배려나 마음은 상대에게 짐이 됨을 특히나 고부간의 관계는 더 힘듦을 배우는 중이다.

될 수 있으면 멀리서 드문드문 보려 하고 공간적 거리 두기를 하는 중이다.

그 거리와 희박한 빈도가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동아줄이라 믿는다.


아들보다는 며느리의 마음을 읽어 보는 중이다.

내가 며느리였을 때 원했던 마음을 기억해 내 철없다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반영하여 시어머니의 마음을 조율하며 자제하는 중이다.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 잘 된다.


너무 들여다보지 않아 섭섭해할까 염려가 되어 지나가는 말로 한 번 물어보니 너무 좋다고 나의 그런 배려에 감사하다고 며느리의 칭찬을 받았다.

무언가 많은 것을 해주고 싶고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상 아무것도 해 줄 게 없었고 오히려 잘못하면 부담만 안겨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그래서 솔직한 며느리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새로운 변화가 생기면 누군가에 맞춰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워가야 되는 것이라는 것, 평생을 배워가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요즈음은 확실히 편리한 시대이다.

사진을 개인적으로 따로 보낼 필요 없이 앱을 깔아서 아기 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유한다.

아기 사진과 동영상을 거의 매일 올려주기 때문에 보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내가 살았던 문화와 달라서 신기하고 편리해서 좋다.


심심할 때마다 수시로 들어가서 아기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보다 동영상이 더 좋다.

움직이는 것이 실제로 보는 것 같아서 좋다.

다운로드해서 지인들에게도 가끔 보여준다.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좋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엊그제 한 카레가 얼려 있다.

맛있다고 한 아들네의 말이 생각나서 갖다 줄까 하는 마음에 많이 한 것이다.

가져가라 하기도 너무 미미하고 가져다주기도 그렇고 서로 힘만 들 것 같아 냉장고로 들어갔다.

혼자서 열심히 며칠을 먹어야 되겠다.

다음엔 정말 먹을 만치만 조금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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