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멈춘다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하게 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얀 백지처럼 작동이 멈춘다.
순식간에 생각들이 지나가면서 멈춘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못한다.
한 해가 마감되는 달이라 포인트가 소멸된다는 문자를 받았다.
몇 번 알림이 왔을 것 같은데 오늘 온 알림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다.
인터넷 쇼핑을 함에 따른 누적된 포인트이다.
그 사이트에 요즘은 거의 쇼핑을 하지 않고 다른 사이트로 옮겨가서 쇼핑을 할 것이 없다.
사이트에 들어가 현금화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찾다가 중간 정도에서 헤매며 에이~ 모르겠다며 포기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딸에게 물었다.
직접 하라고 한다. 잘 모르겠다 하니 모르는 게 아니라 생각을 안 하니까 그러는 것이라며 짜증을 낸다.
부아가 치민다. 생각이 안 나는 데 생각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여러 번 해본 네가 해 보고 알려 주면 해 보겠다 했다. 같이 가서 여러 번 했는데 왜 기억을 못 하느냐 한다.
같이 갔어도 옆에만 있었지 네가 다 해서 난 모른다 했다. 한숨을 쉬며 딸이 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상품권으로 돌리든지 현금화하려면 주중이어야 하는데 지금 주말이라 안 되는 것 같다며 현금화는 할 줄 알지? 하면서 직접 하라 한다.
으~ 지금 생각났을 때 해결해야 하는데 또 깜박하고 며칠 후면 놓쳐 버리겠네 아깝네 하며 중얼거렸다.
매번 직접 하라며 짜증 내니, 해 보고 안 될 때만 물어보는 것인데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왜 생각이 안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머리가 안 굴러가는 것일까?
왜 치매 걸린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걸까?
현금 들고 시장을 보던 세대라서 그런 걸까?
쇼핑을 해도 실물이 아닌 그림 같은 물품을 선택하고 숫자상의 계산과 현금이 아닌 카드로 결제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처음 인터넷 쇼핑하고 결제할 때 진짜 돈이 나갔는지 물건이 진짜 오는지 의심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과정이 반복되니 이제 그러려니 하면서 쇼핑을 한다.
그런데 가끔 안 해본 것들과 마주하면 처음 인터넷 마주했던 그때처럼 멘붕이 온다.
하나씩 읽어가며 선택하는데 빠트린 정보는 없는지 선택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으로 더 많은 긴장이 뒤따른다. 눈앞에 옆에 위에 아래에 있는데 못 찾는 경우도 많고 엉뚱한 것을 클릭하고 다음으로 넘어간 뒤 없다고 우기게 된다.
꼭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 기분이 싫어서 자꾸 피하게 되고 믿고 맡길 만한 누군가 특히 딸에게 부탁하게 된다. 막상 딸도 들어가서 하는 것 보면 나처럼 다 훑어보고 선택하고 있다. 과정은 같은데 나보다 좀 더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 쇼핑몰에 가면 산더미 같은 물건들에 놀라고 짓눌려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 숨이 막힌다.
층층이 높이높이 진열된 상품들을 올려다보면은 개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로 눈높이로 볼 수 있는 작은 쇼핑몰에 간다.
인터넷 쇼핑이 나에겐 거대 쇼핑몰 같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는데 막상 들어가면 보지 못한 것들이 엄청나게 유혹하고 있다.
세일 정보를 놓쳐서 싸게 사지 못하고 돈을 더 들이는 경우가 있다.
뭔가 유익한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면 이것저것 둘러보아야 한다.
세일하고 있으면 당장 필요치 않더라도 나중에 필요할 것 같다.
세일을 놓치지 않아야 알뜰 쇼핑을 한 것 같다.
사실은 필요한 것만 사고 다른 것은 안 보고 안 들리는 게 알뜰 쇼핑이다.
만져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쇼핑 과정들이 바보 놀이 같고 게임 같다.
그렇지만 실제로 현금이 나가고 들어가는 것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통제되지 않는 거대 쇼핑몰 앞에 서서 조종당하는 개미같이 무능하게 느껴진다.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백치가 되고 치매가 된다.
아직도 난 인터넷 쇼핑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상품보다 더 나은 정보가 있는데 놓친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