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은 불안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아쉬움과 부러움 속에서 가까운 지인이 유럽으로 떠났다.
그곳에 이미 도착했으니 벌써 시작한 것이다.
무사히 도착한 것이 첫 관문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일 년 넘게 언어와 자격증들을 획득하고 수많은 서류를 접수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방을 셰어하고 짐을 쌓다 풀었다 다시 쌓으며 힘들게 울기도 했지만 결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터져버린 이민 가방을 덕지덕지 테이프로 감싸고 배낭과 캐리어를 이고 지고 떠났다.
도착만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도착한 기쁨은 잠시뿐 현실에 부딪쳐 그 기쁨은 뒷장으로 넘어가버렸나 보다. 어마어마한 짐들을 끌어안고 무사히 도착했음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몇 주 지나지 않아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막막한 조급함이 밀려와 힘들어하고 있다.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고 또 잤다며 멍해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페이스 톡으로 통화를 하는 데 얼마나 힘든지가 그 멍한 시선에서 느껴진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새로운 직장을 구해 새로운 삶을 시도한 그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낯선 곳에서 떨구고 간 익숙한 것을 그리워하고 익숙한 것의 편안함을 아쉬워하고 있다. 새로운 것들이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낯설고 불편하고 피하고 싶어 져 불안해졌다.
집도 직장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안정을 몹시 원하고 있다 보니 자신의 시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끼어들어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불안하기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 불안에 짓눌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최대의 관건이다.
그곳에 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다 견뎌내고도 안정을 찾지 못하니 쉬고 싶어진 것이다. 정상에 오르려면 아직 더 올라가야 하는데 지쳐버려 산 중턱에서 내려오던지 더 오르던지 일단 쉬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쉬듯이 그녀는 잠을 잔 것이다. 무능이 아니다.
쉬는 것이 다 무위한 것이 아니다.
쉬는 것이 충전이고 재도약을 위한 준비임을 몸은 알아차린 것이다.
참으로 신통한 몸의 생존본능이 아닌가.
시도는 선택이지만 거기에 따라붙은 선택하지 않은 불안은 덤이다.
불안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뒤에 두고 보지 않고 떨구어 내려는 듯 서두르지만 떨궈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에 쫓기어 지치고 주저앉게 될 수도 있다.
뒤가 아니라 곁에 두고 같이 가야만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다.
시도 자체가 힘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불안은 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정이 없어서 불안한 것이 아니다.
힘이 미약하다고 느껴서 불안한 것이다.
알면 힘이 생긴다. 몰라서 불안한 것이다. 앞으로 알아가면 된다.
지금 이 순간을 누리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이란 수필집을 읽고 있다. 만약 저자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이런 글을 쓴다 해도 과연 누군가 들어주었을까. 책을 출간할 수 있었을까.
성공이란 결실이 이 모든 것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알아주는 성공이 없다면 나는 한낱 무명의 인간으로 살다가 가는 것일까. 그녀가 성공한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귀 기울여 그녀의 말을 들었을까.
성공만이 전부일까. 과정이 전부일까.
과정이 있었기에 성공이 있는 것이다. 과정이 없는 성공은 없다. 그러기에 과정과 성공은 분리할 수 없다. 그녀가 성공만 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 충실했기에 성공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과정이 있어야 성공이 있다. 성공하려 애쓸 것이 아니라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성공은 따라오는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는 성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자신이 알아주는 성공이면 된다. 성공은 그냥 성공일 뿐 세상이 알아주는지와는 상관이 없다.
과정에 충실했느냐가 관건이다.
과정에 충실하자. 그것도 꾸준해야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꾸준한 과정을 완수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꾸준하다는 것을 무엇일까.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면 꾸준한 것일까.
그 순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일까.
꾸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즐기려면 어찌해야 되나.
그 순간에 있으면 된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즐기고 있는가.
이 순간에 충실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