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뜯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by 오순

내 고양이가 좋아하는 강아지풀을 뜯으려고 잔디밭에 들어갔다. 화단보호라는 가이드 표지가 걸린 줄을 넘어서 들어갔다. 공원에는 거의 모든 곳에 그 화단보호라는 가이드 줄이 쳐져 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거의 모든 개들이 산책을 하면서 소변이나 대변을 본다. 때로는 주인과 함께 잔디밭 안쪽 깊숙이 들어가 놀기도 하고 대소변을 보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깨끗하지 않아 아무 곳에서나 풀을 채취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 들어 공원관리자들이 하도 잡초제거를 해대서 잡초 구경하기가 힘들다. 잡초뿐만 아니라 산책로 쪽으로 조금이라도 뻗어 내린 나무들은 사정없이 잘려나가고 기계에 안쪽으로 10센티미터 제거된다. 자연스럽게 뻗어가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왜 저렇게 군인들 이발하듯 잘라내는 것일까. 보기에도 거북하구먼.


작년까지만 해도 봄부터 가을까지 강아지풀 천지여서 깨끗한 곳을 골라 채취할 수 있었는데 이젠 희귀본이 되어서 강아지풀 찾기가 힘들다. 주로 연한 잎으로 뜯는데 최대 열 잎 정도면 충분하다. 이젠 산책이 아니라 어느 곳에 강아지풀이 올라오고 있나 그곳이 깨끗하다 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 주 임무가 되었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여 연한 강아지풀을 보면 금맥이라도 발견한 양 집에 갈 때 저기서 채취하자 하고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씩 되새기게 된다. 너무 일찍 채취하면 금방 시들어버려 먹지 않기 때문에 집에 들어갈 때 가는 길에 채취해 가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집에서도 좋아하는 귀리를 화분에 키워서 뜯어먹게 하는데 야외에서 뜯어온 강아지풀을 더 좋아한다.


여기저기 헤매 다니며 골라 채취하는 중 며칠 전 드디어 썩 괜찮은 한 곳을 발견했다. 당분간 저기서 주로 채취해도 될 것 같았다. 그곳에서 두 번째 강아지풀을 뜯어 손에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나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불러 세운다. 할머니는 큰 일이라도 난 것 마냥 눈을 크게 뜨고 속삭이듯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뭐 도와달라는 것인가 싶어 들어보니 카메라가 사방에서 다 보고 있고 다 찍고 있다며 반복하여 말한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멍하니 할머니를 보다가 내 손에 있는 강아지풀을 보고 다시 그 할머니를 보고 아하하고 웃고 말았다. 뭔가 궁금해서 말을 건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불법 범죄자 취급을 하며 훈계하려고 말을 건넨 거였다. 할 말을 잃어서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뭔가 모자란 듯 남의 말에는 귀를 전혀 기울이지 않는 그럴 뜻도 없는 그 할머니를 보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공원 잔디밭이 무슨 금기의 땅도 아니고 화단보호라는 차원인데 법을 어긴 범죄자 취급이니 할 말이 없었다. 사시사철 화단보호이니 사람을 위한 것인지 관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보호가 때로는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보호할 꽃도 거의 없고 기계로 긁어대는 통해 맨 땅이 드러나 도대체 뭘 보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연을 위한 것인지 관리를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보호 줄이다. 그래도 규칙이라면 규칙인데 그것을 어겼으니 잘한 일은 아니지만 내용상 보호를 어긴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개들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수시로 그 안에 들어가도 용납이 되지만 사람은 풀을 뜯어도 용납이 안 된다는 거네. 보통은 뭐 하는 것이냐고 그것은 왜 뜯는 거냐고 묻는데 이 할머니는 초등학생 혼내듯 감시카메라로 엄포를 놓았다. 그제야 '아 여기 카메라 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며 벌금 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아하 길 건너 저쪽 공원에서 어떤 할아버지는 포도넝쿨 화분에 심었는지 우연히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완두콩이 열렸는데 그것을 채취하던데, 그 할아버지도 벌금 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강아지풀잎 뜯었다고 화단에 들어갔다고 보호할 잔디나 꽃도 휑하던데 괜히 창피하게 엄포를 하고 난리야.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과장되어 있어 내가 멋모르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산책객들이 뒤돌아보며 흘깃거린다. 기분은 묘하게 웃기면서도 찜찜하다. 내일은 그럼 강아지풀을 어디서 뜯어야 되나. 그곳에서 또 뜯으면 그 할머니가 어디서 나타날 것 같다. 그 할머니 위세로 봐서는 청원경찰이라도 대동하고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이 된다.


개처럼 고양이가 산책이 되면 얼마나 좋아. 풀 뜨는 것이 일거리가 되지 않아도 될 터인데. 그렇게 열심히 채취해 간 풀을 맛나게 먹고 다 토해버리면 엄청 아깝다. 어떤 날은 욕심내서 다 먹어대고 어떤 날은 조금만 먹고 남긴다. 남기면 또 버려야 되어서 아깝다. 돈이 들지는 않지만 노고가 들어가서 아까운 것인가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는 나만 보면 풀 뜯어 왔는지 야옹거리며 가방을 검사하고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해 댄다. 성격이 급해서 천천히 먹어라 해도 급하게 먹는다.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토하기 십상이다. 에효 어디 누가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며칠 굶기라도 한 것 마냥 허겁지겁 먹어대니 강아지풀을 아니 뜯을 수가 없다.


그곳에 강아지풀이 아직 싱싱하고 좋은데 그 할머니 때문에 어째야 되나 갈등이 생긴다. 나도 보는 눈이 있어 보호할 화단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 여겼는데 그 보호 줄 때문에 할머니 말을 무시할 수도 없고. 아까 지나가는 길에 보니 강아지풀이 살랑살랑 연한 잎을 흔들어대며 유혹하고 있다.


오늘은 더 많은 강아지풀들이 올라와 있다.

에이 그냥 뜯어도 화단을 망치거나 하지는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 할머니의 잔소리가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와 바람에 춤추고 있는 강아지풀이 눈앞을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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