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았다 뺏기는 것인가

흰머리

by 오순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본 흰머리는 나를 경악하게 했다. 정수리와 앞머리에 새치도 아닌 흰머리가 그득했다. 갑자기 거울 속에 내가 할머니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로 갔나.


어릴 적 낮잠 자는 엄마 머리에 흰머리를 뽑아주면 시원하다 하셨다. 시원하다 하니 지루한 줄 모르고 한참을 뽑았다. 뽑아도 뽑아도 흰머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흰머리 뽑는 것이 지겨워져 잠든 엄마 몰래 살금살금 빠져나가 놀러 나갔다. 엄마에게만 있던 그 흰머리가 나에게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흰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사람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흰머리를 찾기가 힘들다. 그만큼 흰머리라는 노화를 감추고 젊게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염색을 하지 않고 흰머리로 다닌다면 뭇시선 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간혹 젊은 사람도 유전이나 스트레스성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백발이 되기도 한다지만 나이 들어 백발이 되어가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할 수 없이 염색을 했다. 염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머리가 솟아 올라와 다시 염색을 해야 했다. 주기적으로 자주 염색하다 보니 머리카락은 가늘어지고 거칠어졌다. 반복되는 염색으로 머리카락 색은 갈색에서 아주 진한 흑색이 되었다. 다른 색을 염색하고 싶어도 흰머리가 금방 드러나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멋 내기는 글렀다. 평소 멋 내는데 그리 치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 억울하기만 하다. 무언가 빼앗긴 듯 손해 보는 느낌이다. 이렇게 선택권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면 젊었을 때 빨강, 파랑, 노랑, 회색, 녹색 등 여러 가지로 색색들이 염색을 해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젠 딱 보아도 노화용 염색이구나 싶게 진한 흑색 머리카락이 되었다.


낭자머리를 요새는 거의 볼 수 없지만 어머니는 낭자머리였다. 염색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때의 낭자머리는 구식 취급을 받아 거의 신식 파마머리로 바꾼 지 오래되었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훨씬 젊은 막내 이모까지 한 파마가 싫다고 했다. 구불구불하고 산만한 모양새가 보기 흉하다고 했다. 뒤늦게 단발이라도 해볼까 생각했는데 머리숱이 없어서 포기하셨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숱이 적어진 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쓰다듬고 모아서 꼬아 돌려 비녀로 고정을 했다. 힘없는 머리카락에 비녀는 고정되지 않고 자꾸만 흘러내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고정시켜 주어야 했다. 자꾸만 빠져나오는 머리카락이 추하다며 몇 번씩 쓸어 올리시던 그 낭자머리가 그립다.


나이가 들면 머리 모양새가 다양하지가 않다. 단발머리나 파마머리나 묶은 머리가 다이다. 그렇다고 원하는 모양새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기에 추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이다. 젊은이들은 대충 풀어헤쳐도, 얼추 묶어도 예쁘다. 부럽다. 부러우면 진다 했던가.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중년을 위한 부분가발도 많다는데 보조로 쓰면 되겠다. 그리고 내 나이에 맞는 멋진 모자를 사야 되겠다. 그리 대책을 세우니, 휑한 정수리를 보면서 잃어가던 자존감에 조금 위로가 된다.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덜 빠지게 수시로 머리를 두드려 마사지도 해본다. 트리트먼트도 열심히 해주고, 단백질 팩도 해주고, 먹는 것도 열심히 찾아 먹는다. 어차피 난 흰머리 때문에 기가 꺾이어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보조품을 활용하여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회복하자.


남동생은 대머리이다. 유전성이 아버지 때보다 더 심하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머리 손질하는 주 미용실이 따로 있다 한다. 그 미용실이 문을 닫아 할 수 없이 다른 미용실을 가는 경우 얼마나 투덜대던지 가족들이 과예민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다. 이리 봐도 저리 보아도 그냥 대머리인데 어느 머리카락이 그리 특별했을까. 남동생은 열심히 나름 자기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설명해준다.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가 없었다. 보여주려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휑한 머리를 보며 자기를 위로하려는 것 같다. 아직도 동생은 자신의 대머리가 익숙하지 않아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빠져 없어진 머리카락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남은 머리카락 한 올이 소중한 것이다.

가발을 쓰든가 머리카락을 심든가 해보라 했는데 괜찮단다. 나름 플러스도 있다 하면서. 영업하는데 중후해 보여서 득 보는 게 많고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하였다. 요즘 자기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대머리를 내놓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머리로 다니는 동생의 젊은 얼굴은 영업을 수월하게 해준다 한다. 아마도 요즘 단점이라면 단점인 대머리가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풀게 만들어 편안함을 제공해 주나 보다.


어느 날 모임에서 후배가 흰머리가 늘어나서 충격받은 이야기를 했다. 선배인 우리는 ‘아직 멀었다. 뺏길게 얼마나 많은데. 더 살아 봐라.’하고 웃었다. 후배는 자신의 충격을 완화해줄 위로가 필요했는데 선배들은 충격받을 게 더 있다며 그건 충격에도 속하지 않는다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하니 어떻게 살지 무섭다고 하였다. 사실 후배만큼이나 우리도 노화로 인하여 무엇을 더 뺏길지 모른다. 지금까지 뺏긴 것만 알뿐이다.


이십 대에는 삼십 대가 어른이라고 거드름 피우면 어차피 성인이기는 마찬가지이고 같이 늙어가는 판국이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은근히 맞먹었었다. 그러나 이젠 십 년은 더 젊은 후배가 부럽기만 하다. 그 후배 나이였을 때 내가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아 허우적거렸었는데, 후배가 그 나이가 되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니 참 인생무상이다. 지금의 나를 십 년 뒤의 내가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나중 십 년 뒤보다 지금이 아직 십 년은 더 젊으니 젊게 살아도 되겠다. 이렇게 십 년을 빼내가면서 살아가도 무방하겠다.


나이 들어 어떻게 살아? 못 살 것 같다고 젊었을 때는 생각했다. 젊었을 때는 삼십만 넘어도 엄청 나이가 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그보다 훨씬 더 더 나이 들었어도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 젊은 나도 나이 든 나도 모두 다 그냥 나였다. 나이 들면 본래의 자신과 다른 노인이 아니고 같은 사람인 아무개 씨로 살아가는 성인이었다. 노화를 아웃사이더 취급하든 말든 노년도 삶의 연장선이기에 당당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인생은 ‘아기 ⇒ 어린이 ⇒ 청소년 ⇒ 성인 ⇒ 노인’ 까지가 삶’이다. 노년이 삶에서 삭제되는 것이 아니다. 죽어야만 삶이 끝나는 것이다. 노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노년은 그냥 삶의 연장선이다. 흰머리 가지고도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머리카락이 외모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 머리카락의 변동은 상당한 충격을 준다. 그 충격을 완화하고 보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노력을 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노력마저 하지 않으면 가을에 시들어 버려진 가시덤불처럼 추해 보일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같이 가는 수밖에 없다. 반백 머리를 가지고 여러 가지 레이아웃을 하며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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