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협.착.디.스.크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고개는 열두 고개 고개를 고개를 넘어간다
‘꼬부랑 할머니가’ 노랫말이다.
어렸을 적 동네 마실 나온 꼬부랑 할머니가 ‘휴~’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의지 삼아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꼬부랑 허리가 길게 길게 펴지는 것이 할머니가 마술이라도 부리는 듯하여 엄청 놀랐다. 그렇게 허리를 쭈욱 펴서 하늘을 보고 다시 굽어진 허리로 땅을 보면서 걸어가셨다. 처음부터 할머니 허리는 꼬부랑인 줄 알았는데 반듯하게 펴지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느릿느릿 땅만 보고 가는 것이 답답하고 이상해 보여 가끔 뒤따라가며 놀리곤 했었다.
요즈음은 고령화 시대라서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꼬부랑 할머니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보기 힘들다. 건강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꼬부랑이 될 때쯤이면 요양병원에 계셔서 그러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느 날 내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컴퓨터로 편집디자인을 하는 직업이기에 하루 기본 열두 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흔한 직업병인 디스크이려니 생각했다. 그전부터 목이 심하게 굳어지면서 두통이 오고 팔다리가 저려왔었다. 그러다 말겠거니 생각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버텼다. 그런 와중에 지인이 내가 다리를 절고 있는 것이 표시가 난다고 했다. 운동을 좀 하면 괜찮으려니 생각했다. 가볍게 달리기를 하는데도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허리가 펴지지 않는 그날에서야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퇴.행.성.협.착.디.스.크
단순한 디스크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오는 퇴행성 디스크가 같이 온 것이다. ‘퇴.행.성’이란 말에 충격을 받아 한참을 멍해 있었다. ‘퇴.행.성’은 나이 들어서 오는 노화의 현상이다. 노화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몸 안에 노년이 들어앉은 것이다.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여러 가지 물리치료를 했다. 내 몸이 무슨 밀가루 반죽이라도 되는 양 이리 당기고 저리 두드리고 누르고 지지고 약을 투여하였다. 내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니었다.
치료하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 나아지는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다 낫는 것이냐고 울부짖는 나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성급하다’며 꾸준히 치료하고 운동해야 한다고 한다. 주사 한방으로 낫는 병이 아니란다. 스트레칭을 하라 한다. 죽을병도 아니고 며칠 내로 치료되는 병도 아니면 병원에서 죽치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치료방법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꼬부라진 허리로 살아가야 했던 할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잘 때도 편히 주무시지 못하였을 것이다. 척추가 협착이 되면 혈액 순환도 안 되고 신경도 눌려서 편하게 잘 수가 없다. 잠을 못 자니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신경통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장기적으로 혈액순환이 안 되면 전체적으로 몸이 안 좋아져 만병이 쓰나미처럼 밀려든다.
한방병원에 침을 맞으러 가니 노인들이 아주 많다. 침의 주요 역할이 막힌 혈을 뚫는 것이다. 그러나 침은 일시적일 뿐 다시 혈이 막히면, 다시 침을 맞아 혈을 풀어 주어야 한다. 침으로 막힌 혈을 풀어 일시적이나마 고통을 덜기 위해 노인들이 한방병원에 많이 오는 것이다. 침은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다. 남은 인생 장기적으로 갈려면 운동을 겸해야 한다. 노화로 약해진 혈관들과 장기들의 운동성이 느려서 혈이 자주 막히니 그때그때 침으로 풀어주고 운동으로 근력을 조금이라도 보존하여 혈액순환을 도와주어야 한다.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경험담을 물어보고 인터넷을 뒤지고 마사지사를 찾고 개인 치료사를 찾았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너무 빼앗기고 효과는 미미하고 답답했다. 개인별 지도는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비용이 비싸서 계속할 수가 없었다. 좀 우호적이고 성실하게 대해준 치료사에게 매달렸다. 일도 계속해야 되는 가장인데, 개인치료는 너무 부담이 된다, 어차피 앞으로 오랫동안 운동을 해서 몸을 회복시켜야 한다 하니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저렴한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치료사님이 같은 건물에 있는 비용 부담이 좀 덜 되는 ‘단체 핫요가’를 권했다.
심하게 틀어진 자세를 단기로 개인별 지도를 받아 교정하여 고통을 좀 완화시키고, 단체 요가로 장기간 몸을 바르게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핫요가를 일 년 정도 하니 몸에 변화가 왔다. 일을 쉬었으면 훨씬 더 빠른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요가를 시작하여 석 달이 지나도 좀 나아졌는가 싶으면 다시 나빠지고 하여 속상해서 운동 끝나고 엎드려 울기도 했다. 울고 있는 내 등을 조용히 마사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요가강사님이었다. 울고 있는 것 들키기 싫어 가만히 있었지만 너무나 감사했다. 내 몸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손길이 치료약 같았다. 기운이 나서 더 열심히 요가를 했다. 나중에 강사님들이 나에게 요가강사를 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요가를 시작한 초기에 젊은 아가씨들이 나를 내려다보듯 흘깃거렸다. 난 속으로 ‘나도 너희처럼 탄탄할 때가 있었다. 이것들아!’하고 외쳤다. 일 년이 지나니 아가씨들이 올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래 봬도 내가 너희들 나이였으면 더 탄탄했을 거야. 흥! 지금 나이 들어 이만한 것이지.’하고 속으로 으스대었다. 그러나 평소에 일하는 자세가 좋지 않아 디스크가 좋아지는 기준으로 ‘상중하’로 보자면 ‘중하’를 오르내렸다. 꾸준한 운동으로 ‘하’로 떨어지지 않게 버티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일하는 자세를 고치기로 했다. 평소에 디자인에 신경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모니터로 기어 들어가는 자세나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세가 되었다. 자세에 대해 신경을 써서 일하고 나면 운동한 것보다 더 나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자세에 신경을 썼다. 보통 허리가 아픈 분들은 하체에 힘이 없이 풀어져 앉아 있었다. 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려 애쓰니 하체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덜 아팠다. 힘없이 덜렁거리던 발가락에도 힘이 조금씩 생겼다.
신기하게도 꾸준한 운동과 자세교정으로 어느덧 내 몸 안에 있던 노년이 사라지고 중년이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뿌듯하다. 아파보니 내 몸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었다. 특히 젊었을 때는 굵은 내 허벅지를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고 싫어했었는데 그 근육이 나를 지탱해준 소중한 것이었음을 이제 알았다. 허벅지 근육이 약해지면 척추로 버티기 때문에 척추에 무리가 가서 허리디스크가 생긴다.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허벅지 힘을 보강해야겠다. 몸을 아끼고 보살피니 노년이 중년으로 회복되고 중년이 청년까지는 무리이겠지만 더 나은 중년이 되리라 믿는다.
‘퇴.행.성’이 왔다고 주저앉을 뻔했지만 길을 찾아 노력한 보람이 있어 나 자신이 뿌듯했다. 장기전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약과 물리치료에 의지해 병원을 들락거리는 환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퇴.행.성’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노화와 더불어 가며 운동으로 몸을 보강해 내 몸에 대한 통제를 잃지 않고 살 것이다. 꾀부리며 운동하러 가기 싫어 뜸 들이지만 운동이 끝나면 나를 두 세배 칭찬해주고 토닥이며 버텨나간다. 몸을 되살리는 데는 단기가 아닌 장기전이라는 것도 배웠다.
노화라는 것은 몸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기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꾸준히 운동한 결과 몸에 대한 통제권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무조건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상태에 따라 자신한테 맞는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시는 통제권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운동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