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를 풀다
아무리 긴 시간을 함께 해도 같이 할 수 없을 때가 온다.
결혼이란 평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는 서약이다.
가족과 친지와 지인들의 축복 속에서 시작한 결혼이었으나 살다 보니 수많은 생활의 변수 속에서 달라진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시작했던 결혼이 체면이라는 족쇄로 변형되어 서로를 구속하고 괴롭히고 있었다.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존중도 잃고 빈껍데기로 살아가고 있었다. 파괴되어가는 결혼생활에 대해 서로에게 책임전가를 하며 싸우기도 지쳐 이젠 투명 인간처럼 서로를 보지도 않으려 애쓰며 무감각하게 습관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TV 어느 방송에선가 두 노인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아 밥도 따로 챙겨 먹고 있었다. 저렇게 싫다면 헤어지는 게 낫지 왜 같이 사는 것일까 하고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었다. 될 수 있으면 같이 마주 하지 않으려고 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안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혼자 먹는 것이 편해졌다. 내가 먹고 싶은 것 간단히 준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보고 들으면서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먹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어쩌다 아이들이랑 같이 먹어야 될 때면 어쩔 수 없이 같이 먹는데 여간 불편하고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평소에는 기본적인 것만 챙겨 놓고 나머지는 알아서 먹으라고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좋아하는 반찬을 이것저것 해놓고 챙겨주었다. 아이들 보기도 그러해서 같이 챙겨주면 조용히 먹으면 될 텐데 굳이 ‘너희들 때문에 간만에 내가 호강한다’며 먹는 남편을 보며 참 부모로서 체면은 어디다 던져 버렸는지 눈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느 날 아이가 엄마와 아빠는 왜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싸우는 모습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리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유지해 오던 결혼이 이미 아이들에게는 다 드러나 보였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워졌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유지해 오던 결혼이 더 이상 유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파하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혼자라는 홀가분한 축복보다는 세상에 보여질 뒷말이 견뎌내기 싫었다. 그리고 손해 보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더 노력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대로 끝내면 인생에 큰 실수를 하는 것 아닐까, 오십이 넘은 이 나이에 무엇을 혼자서 시작할 수 있기는 할까 등등 될 수 있으면 제자리에서 버티고 싶어 졌다. 그렇게 혼자이고 싶어서 안달을 했던 시간들이 어이없을 정도로 난 몇 개월 동안 고민하며 있는 자리에 뭉개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새롭게 시작할 자신감이 자꾸만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태까지 내 자유를 결혼이 좀 먹고 있다고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나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잠시 지나가는 갈등인 척 무시하고 싶어 졌다.
그러나 상대방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막 나가고 있었다. 자기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며 나에게 큰소리를 내지르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의무는 저버리고 권리만을 주장하는 염치없는 사람이 남편이었던가 하는 생각에 갈수록 나의 선택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적어도 염치는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책임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양보를 거듭하고 참아주니 이젠 권리처럼 으르렁 대고 있었다. 더 이상 나도 체면이고 뭐고 참지 않고 막 나가고 있었다. 이러고 버티며 사는 나의 결혼생활이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존중은 스스로 얻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지 못하고 서로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짓은 나이 든 우리에게 너무나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추해지기 전에 없는 힘을 쥐어짜서라도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감은 없지만 둘이서 이대로 험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절대 ‘내 생애 이혼은 없다 죽을 때까지 같이 간다. 그래야 다음 생에서 저 인간 다시 만나지 않는다.’를 외치고 살았던 내가 마음을 바꾸어 이혼하자 하니 남편은 분노했다. 한 번 결정하면 꿈쩍 않는 나의 태도에 남편은 의외로 빠르게 자기 살 길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버텨왔던 나의 시간들 때문에 배신감도 들고 허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력 제로라서 혼자서 못 살까 봐 걱정하였는데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가족을 책임지지는 못했지만 자기 자신만은 그래도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혼자서 떠안고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나도 내 살 길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결혼도 자유로운 선택이었듯이 이혼도 체면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를 위해 자유로운 선택을 하자고 했다. 억지로 결혼을 유지하면 더 나빠지고 원수 사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멈추면 서로 동반자는 못 되어도 친구로는 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말에 남편은 이혼한 마당에 무슨 친구냐며 코웃음을 쳤다.
지금은 이혼한 지 이년 넘었지만 가끔 만나 서로에게 필요한 것 해 주고 대화도 편하게 한다. 이혼 전에는 말만 섞으면 서로 비방하고 상처주기 바빴는데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서인지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 능력이 제로였던 남편이 이젠 알바도 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잘 꾸려나가는 것을 보며 진작 이혼할 것 그랬다며 같이 웃었다. 그동안 내가 자신의 보험이었다는 말을 아주 편하게 하는 전남편을 보며 참 무책임하고 뻔뻔한 남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며 이혼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편은 무슨 악의가 있어서 말한 것은 아니지만 태생이 자기만 아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책임지고 보호한다는 자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젠 알 것 같다.
비록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으면 그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주의가 나의 철칙이다. 다른 것 다 제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아이가 보호받을 가정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의 무신경과 무책임에 날을 참 많이 세우고 힘들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내가 가장을 할 테니 보조라도 해 달라했는데 그것마저도 못하고 나한테 자기 짐마저 얹고 있었다. 그러면서 미안한 마음 없이 갈수록 뻔뻔스러워지는 것을 보며 내가 사서 고생하며 사람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전남편은 결혼 자체가 체면 빼고는 다그치는 나 때문에 고달팠을 것이다. 내가 남편의 어머니도 아닌데 어떻게 고쳐가며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물며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남의 자식인 남편을 내려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책임감 없는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나도 많이 고달팠다. 아마도 나를 존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난 그냥 이혼하지 않고 그의 보험 노릇을 해주었을 것이다. 측은지심마저 없는 결혼에 피폐해지는 나 자신을 구해야 했다.
우리 둘에게는 이혼이 구제책이 되었다. 지금은 서로 편하다. 처음 일 년이 좀 이상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거의 삼십 년 가까이 같이 살아온 생활습관이 쉬이 없어지기 어려웠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자유시간도 많고 나를 피폐하게 하는 부정적 감정들이 사라져 긴장이 풀린 것인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잠만 잤다.
이젠 하나둘 누군가를 위하던 습관에서 나를 위한 습관으로 돌리고 있다. 체면에서 벗어나니 두려움도 사라지고 편해졌다. 결혼도 이혼도 두 사람이 만나 노력해야 되는 것이다.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면 존중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의 길들여진 걱정이 듣고 싶지 않아 굳이 묻지 않으면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이혼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삶이기에 남들과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혼을 굳이 알려도 상대방에게 위로를 해야 할지 축복을 해야 할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 부담만 안겨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나에게 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 길을 나 혼자 가고 있다. 딸이 솔로로 돌아온 것 축하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 옆에 누가 붙어 있어나 보구나 생각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다. 혼자라고 해서 무인도에 혼자인 것은 아니다. 세상과 더불어 가는 나는 이젠 나를 위한 길을 가려는 것이다. 책임감에서 많이 벗어나니 나를 찾고 나를 위해 가고 싶어 졌다. 하고 싶은 것은 무진장 많은데 아직은 마음만 바쁘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멈추면 끔찍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길을 삶을 살며 소식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