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생각한다는 것은 선택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 선택이 아니다.
그저 물 흐르듯 가만히 있어도 생각들이 불쑥불쑥 찾아오곤 한다.
앞뒤 맥락이 이어진 생각이라면 쓸모가 있겠지만 출처 불분명하게 자기 마음대로 떠오른 것들이라 신경 쓸 새도 없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마음 다잡고 신경을 쓰고 싶어도 조각난 생각들이라 판단 내리기 어려운 고약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분개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마디로 소통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절대 본인 잘못이라 여겨지지 않기에 들어주지 않는 상대에게 화만 내기 일쑤이다.
간혹 햇볕이 따스한 곳에는 노인들이 모여서 수다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지나가다 유심히 보게 되면 한쪽은 열심히 이야기하는데 한쪽은 별 반응이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한쪽이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반대쪽 그 한쪽도 별 반응이 없다.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 그저 추임새 일뿐 뭔가 진전되는 이야기는 없다. 간혹 이야기가 추가되어도 그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지 상대방과 소통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셋이 모여도 마찬가지이다. 전부 투명한 유리막에 싸여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만 할 뿐 주고받지는 않는다. 혼자 있으나 여럿이 있으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엔 개그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혼잣말이 늘어갔다.
옆에 있는 딸내미가 간혹 당혹스러워했다. 대답을 원하는 것 이기에는 애매모호했고 혼잣말이기에는 너무 컸다. 제대로 말하는 딸보고 버릇없다고 화를 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딱히 상대의 답을 원한 것도 아니면서 혼자 생각하는 것들이 밖으로 말이 되어 소리가 되어 나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제어가 안 된다고 보아야 하겠다. 이러다 속에만 담아 놓아야 할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실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몸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생각까지도 마음대로 안 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변하는 자신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익혀나가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을 쉽지만은 않다. 원하지 않았는데 잃어버린 것들이 생기고 원하지 않지만 그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런 변화는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혜로워지고 생활도 넉넉해져 여유롭게 지낼 줄만 알았다. 사회에서 도태되어 갈 줄은 몰랐다. 조금이라도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려면 사회 탓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고 보완하려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은 일주일에 두세 번만 운동해도 몸이 탄탄해지지만 나이 든 사람은 일주일 내내 운동해도 현상 유지하기 힘들다. 나이 들어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논리성이 떨어지고 소통이 안 되는 줄도 모르고 상대만 탓하면 완전 아웃되어 버린다. 자신이 사회에 소속되어 있고자 한다면 피 터지게 노력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아마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삶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투명 인간처럼 대하는 것에 대해 남 탓 세상 탓만 하고 있으면 이해보다는 동정을 받게 되고 소통보다는 분노만 쌓이게 된다. 그래도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으면 스스로 일어나는 그 힘에 억울함보다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삶은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젊었을 때는 쑥쑥 읽어가던 책들을 이젠 한 줄 한 줄 읽고 또 읽고 메모도 해가면서 읽는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고 집어던지기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한 줄이라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름이나 지명 따위가 읽으면서 흘러내려 사라져 버리기에 이름과 지명은 종이에 따로 적어서 간단한 요약 설명까지 붙여 놓는다. 책을 읽는 중간에 그 이름이나 지명이 나오면 요약해 놓은 쪽지를 다시 읽어보면 앞뒤 연결되어 계속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앞에서 읽었던 사건들은 뒤쪽으로 가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다시 앞으로 가서 찾아야 되고 그러다 보면 책을 읽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읽고 나면 읽은 것들을 나름 요약하고 메모도 해 놓는다. 그다음에 책을 읽게 될 때 그 요약을 먼저 보고 그 뒤 책을 읽으면 맥락이 계속 이어져 책을 읽는 기분이 난다.
젊었을 때는 한 권의 책을 앉은자리에서 몇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나 배경 그리고 흐름을 다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니다. 한 권을 며칠 씩 걸려 읽어야 되고 흐름도 등장인물도 배경도 다 기억을 못 한다. 보완책으로는 메모와 몇 번의 반복적인 읽힘이 필요하다. 그래도 사라진 것들은 많다. 그래도 건진 것도 많다. 그래서 반반인 셈 치고 읽는다. 그런데 그렇게 길을 들이니 처음보다는 점점 더 기억하는 것이 많아지고 자신감도 늘어났다. 자신감이 느니 더 많이 기억하게 되고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이젠 혼잣말보다는 대화력이 조금씩 회복되어 가고 있다. 내 노력에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