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결혼을 했다

한계선을 지켜주는 것

by 오순


아들이 결혼을 했다. 현실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둘만의 마음만으로 결혼을 한다고 했다. 부모로서 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나 둘의 마음이 괜찮은 것 같아서 승낙했다. 현실적인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며느리가 걱정이 되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보탬이 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둘이서 하는 대로 따라갔다.


마음도 현실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나는 부모로서 체면이 신경 쓰였다. 지금까지 아들과 딸을 낳아 키우면서 체면치레 따위는 던져 버리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사돈이 생기고 집안의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 노릇도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돈한테 치우치지 않게 체면치레도 해야 되는데 형편이 따라주지 않아 마음만 심란해졌다. 그러나 아들과 며느리가 둘만의 합치된 마음으로 현실적인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슬기롭게 밀고 나가는 힘에 동조되어 갔다. 난 진짜 몸만 가서 결혼식을 치렀다.


스몰웨딩(small wedding)이라 하여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방식으로 서초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홀을 거의 무료로 대여해서 결혼식을 치렀다. 그날 아들 내외 결혼식 딱 한 건을 하기에 보통 결혼식장에서 하는 줄줄이 이어지는 결혼식에 비해 시간에 쫓기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도서관 홀이 너무 커서 휑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주차공간도 널널하고 중간중간 손님들이 산책도 할 수 있어 좋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종교가 같아서 교인들이 나서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도와주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뿌듯했다. ‘내 아이가 혼자가 아니구나, 세상과 사람들과 더불어 가는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부모만이 아이를 보호하고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렸던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혼식 전에 상견례에서도 사돈집이 같은 종교 집안이고 아이들을 엄청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느껴져 안심이 되었다. 내가 해주는 것이 없어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제전 여건이 부족해도 둘이서 잘 살아가도록 방해나 간섭만 하지 않으면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두 아이가 고생하지 않도록 무언가 많이 해 주어야만 안심이 될 것 같고 부모로서 책임감을 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못해주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무능해 보여 속앓이를 좀 했었다. 어차피 못해 줄 것 다 내려놓으라 하는데 내려놓아지지 않아 혼자서 끙끙대고 있었다. 내려놓고 속 편하게 있으면 염치없고 무책임한 부모가 되는 것 같아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되지도 않는 기와집을 지었다 부쉈다 했다.


그런데 결혼의 뚜껑을 열기 시작하니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는데 아이들 방식으로 꾸려나가는 것을 보니 잘 컸다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이 넘쳐났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관여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아 주고 축복해 주는 것이 진정 내가 할 일이었음을 서서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젊었을 때 결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나는 현재 내 아이들에 비해 한마디로 결혼에 대해 완전 부정적이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나한테 맞는 것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나의 부모를 보면서, 특히나 어머니의 고달픈 삶을 보면서 ‘결혼은 하지 말자’로 생각을 굳혔다. 다들 결혼하여 살아가는 시대에 결혼하지 않고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우연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연애를 하고 아이가 생겼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결혼을 했다.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은 강력했지만 어떻게 해야 다르게 살 수 있는지는 생각도 못해 보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막상 결혼하니 어머니보다 더한 삶 속에 떨어졌다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정말 나의 하늘이 캄캄해졌다. 어찌해야 될지를 몰랐다. 어떻게 싸워야 될지도 몰랐다.


둘이 부딪치다 보니 그저 결혼이라는 전쟁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아이만 없다면 도망치고 헤어지고 싶었다. 여기서 아이를 내팽개치고 도망치면 더 이상 나로 당당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그냥 주저앉아 버티고 있다가는 악다구니만 남은 삼류 아낙네가 되어가기 딱 알맞았다. 방법은 없는 것인가 며칠을 고민했다.


되돌아보니 남편보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욕했는데 나의 아집과 이기심도 더했으면 더했지 그에 못지않았다. 서로 몇십 년을 다른 세계에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오다가 둘이 만났으니 상대를 배려하기보다는 배려받고 싶은 이기심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어차피 아니라면 평생을 같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은 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어떻게 노력을 해야 되나 고심했다. 나만 옳은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남편이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일단 나부터 고쳐보자. 상대방을 고쳐 나한테 맞추려 하니 엇박자만 나고 그 상처가 부메랑처럼 나에게 두 배 세 배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남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능한 것을 해보기로 했다. 나를 바꾸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나를 버리고 바꾸어 보자, 일단 나만 옳다고 생각했던 아집을 버리고 남의 생각 특히 남편의 생각을 들어보자. 이런 식으로 최대한 노력을 해 보고 그래도 아니면 어떤 아픔이 있더라도 포기하고 헤어지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답은 나에게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상대방을 내가 어떻게 길들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나를 변화시키는 나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변화를 눈치도 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양보하는 내가 약해 보였는지 아니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들여지는 게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더 대차게 나왔다. 나는 속으로 ‘그래 네가 그렇게 계속 그런 식으로 한다면 같이 갈 수 없을 때가 오겠지. 그때는 나도 미련 없이 떠나야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이만큼 했으면 됐다 할 때까지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내가 양보하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도 양보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양보하고 참는 서로를 보면서 남편과 나는 두 아이를 키워 나가며 부부가 되어갔다. 아주 작은 양보이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중엔 나의 변화와 상대의 변화를 보면서 삶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재미있게까지 느껴졌다. 자기 자신한테 솔직해지고 상대방과 그것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이 참 색다르고 삶이 다르게 보였다. 여태까지 살아왔던 삶이 형식적이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살아온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남 보기에는 지난하고 팍팍한 삶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나만은 내 삶이 생생해서 좋았다. 제대로 두발로 땅을 짚고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사람마다 자신의 한계가 있다. 특히 감성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선이 있는데 그것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두 사람이 거리 없이 밀착해 사는 결혼생활에서는 특히 그 선이 정확히 상대방에게 드러난다. 그 한계선은 부부가 서로에게 가장 잘 보인다. 그 선이 드러나 공격당하면 치명타가 되지만 배려하고 건들지 않고 물러나 주면 서로에게 든든한 신뢰의 동아줄이 되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솔직하고 정확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고 상대 감정도 들춰져 서로 부딪쳐도 그 한계선만은 지켜냈다. 내가 그 선을 지켜주는 것을 상대방도 금방 알아차리고 내 한계선도 침범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그것 때문에 생긴 신뢰로 전쟁 같은 결혼생활을 길게 유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계선을 멋모르고 침범해 통쾌해하다가 공격당한 상대방의 더 큰 반격에 휘청거리게 된다. 상대한 가장 취약한 한계선이 보이는 그 순간 멈춰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보복하고 이기고 싶은 욕망이 더 커서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한계선을 수시로 침범하게 되면 그 여파가 회복될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서로에게 준 너무 아픈 상처 때문에 신뢰하기는커녕 상대방을 원망하게 되어 남보다도 못한 원수 사이가 되어 서로 경쟁하듯 상처주기 바쁜 전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처음 결혼하고자 했던 풋풋한 마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배신감에 헤어져서도 보지 않으려 하게 된다.


나는 아들과 며느리가 서로 함께 하고자 했던 그 마음을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한계 라인을 건드리지 않고 지켜주는 기본적인 철칙을 배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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