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_1

아들바라기

by 오순


노모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여동생들과 언니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한 달여 만에 본 어머니는 몰라볼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얼굴과 몸이 반으로 줄어 있어 다른 사람 같았다. 어떠한 생명연장 시술도 하지 않겠다고 평소 언급하신 것 같은데 남동생과 올케가 마음이 편하지 않아 마지막 시술까지 시도한 것이다. 늙은 아기 같은 그 모습에 낯설고 죽음이 서글퍼졌다. 눈도 뜨지 못하고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 병간호를 전부 책임지고 있는 외아들인 남동생이 안타까웠다.


어차피 금방 돌아가실 것 아니니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남동생은 자기가 남아 있을 테니 갔다 점심을 먹고 오라고 했다. 점심 먹는 것 잠깐 일 테니 나갔다 와도 괜찮을 것이라며 남동생을 설득했다. 동생이 승낙하는 순간 어머니의 쪼그라든 그 모습 어디에선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한숨을 쉴 수 있을 만큼 정신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혼수상태에서도 오로지 아들바라기였던 것이다. 남동생 남겨 놓고 밥을 먹으러 갔으면 혼신의 힘을 다해 벌떡 일어나 호통을 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뭐라고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내려놓지 못하였을까 하는 서글픔과 그 질긴 아들바라기에 놀라웠다.


밥 먹고 위로하면서 수다하다가 조금 지체해서 어머니의 임종을 아슬아슬하게 놓친 것 같다. 임종이라기보다는 마지막 숨을 거두신 것만을 보게 된 것이다. 점심 먹고 서두르지 않고 지체한 것이 후회는 되었지만 마음을 다독여 장례를 치렀다. 형식이 무어 그리 중요하다고 친인척들은 임종을 지켜보았는지 조용히 물어보았다. 몇 년 동안 곁을 지키며 간호했던 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한 번 본 고인에게 한 일을 자신이 다 한 것처럼 구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이라는 생각이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보살펴 보호자는 수없이 임종을 준비하고 지켰을 것이기에 마지막 그 순간을 놓쳤다고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고인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자신을 형식적 체면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지켜주었는지를 말이다.


세상을 적으로 보고 오로지 늦게 얻은 아들 하나만을 자신의 편으로 한 채 살아온 노친네이다. 실제적으로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어차피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서 평생을 살고 간다. 누군가를 의지하려고 매달려도 허당이다. 오히려 매달리는 상대의 갈 길을 질척거리게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곁을 떠나지 못한 삶이 너무 서글프다. 오로지 한 마음으로 살아낸 그 삶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딸들이 사다준 옷이나 약들은 그저 그렇게 썩 내켜하지 않으면서 아들이 준 것은 엄청 흡족해하고 아꼈다. 심한 감기에 뒤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어머니를 방문하였다. 낮이면 괜찮다가 잠자리에 누우면 기침이 심해졌다. 컴컴한 방 안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불을 켜고 하시라고 하니 다른 사람 깬다고 어두운 데서 한참을 더 뒤적거리시더니 무언가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몸에 좋은 약이니 입속에 넣고 꿀꺽 삼키라는 것이다. 아니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먹으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남들 깰지 모르니 조용히 꿀꺽 삼키라는 것이다. 밭은 잔기침으로 입이 쩍쩍 말라있는데 어떻게 이 커다란 알약을 삼키라는 것인지. 강제로 밀어붙이는 통에 엉겁결에 삼켰다. 알약 때문에 목구멍이 찢기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너무 피로하여 그대로 잠이 들었다.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남아있던 감기가 다 나은 것 같았다. 그 좋은 약이 무엇이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서랍을 열고 보니 잇몸에 좋다는 ‘인○○’ 약이었다. 아이고! 내가 잇몸 약을 먹고 감기가 나았다며 어머니가 만능사라고 놀려댔다. 아들이 나이가 들어 약해진 잇몸을 보호하라고 사다 준 약을 무슨 보약이라도 되는 양 먹지 않고 아끼다가 딸이 감기 기침으로 끙끙대니 좋은 것이라고 먹인 것이다. 그 약 먹고 나은 것인지 어머니 마음 받아먹고 나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기침이 멎어서 살 것 같았다.


손녀들에게는 할머니이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인 그녀는 노인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하나씩 알게 된 어머니의 노년을 생각해 본다.

늙어 봐야만 알 수 있는 노년이라는 것을 뒤로 밀쳐낼 수만은 없기에 앞에 끌어내어 살펴보고 싶어 졌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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