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고 길들여지다
어렸을 적 난 무조건 발이 먼저 올라갔다. 감정 표현을 할 때도 항상 발차기를 하였다. 아마도 발에 힘이 넘쳐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또르륵 굴러가는 투명한 구슬이 좋아 구슬치기를 했다. 딱 치면 바람과 함께 넘어갈 듯 말 듯하는 딱지가 좋아 딱지치기를 좋아했다. 한겨울 손등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놀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남자애들은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하고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나 공깃돌 놀이를 했다. 하지만 나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가 고무줄놀이보다 더 좋았다. 그것이 놀림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남동생이 걸레를 빨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걸레 빠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남동생은 커다란 걸레를 빨았다. 머시마 거시기 떨어진다며 할머니는 질색팔색 하시며 남동생이 들고 있는 걸레를 집어던졌다. 발차기하는 나를 보고는 가시나가 선머스마처럼 가지랑이를 들어 올린다고 혀를 찼다. 할머니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가시나 머스마가 바뀌었다며 성화이신 할머니 앞에서 난 더 높이 발차기를 해대곤 했었다. 발차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동생도 자기가 걸레 빨기 놀이하는 것이 왜 안 좋은 것인지 모르는 듯 할머니가 감춰둔 걸레를 들고나갔다.
좀 더 커서는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여자아이라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남동생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태권도도 배우게 하고 자전거도 타게 해 주었다. 난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어 몰래 아버지 자전거를 끌고 가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탔다. 몇 번을 넘어지다가 우연히 올라타서 운동장을 굴러가는데 너무 신났다. 그런데 갑자기 운동장 가에 있는 나무가 아주 거대해지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굴러가는 자전거를 조율하지 못해 그대로 나무를 들이받아 자전거가 찌부러졌다. 혼날까 봐 몰래 헛간에 가져다 놓았다. 자전거를 탄 것이 너무 신나 나무를 들이받아 피도 나고 엄청 아팠을 것인데 아픈 줄도 몰랐다.
중학생이 되니 젖가슴이 나오고 생리가 시작되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 것들이 생겨 나와 나를 엄청 불편하게 만들었다. 볼록한 젖가슴이 없는 남자애들이 부러웠다. 한 달에 한 번씩 생리하지 않는 그들의 편함이 엄청 부러웠다. 나보다 힘이 센 것도 부러웠다. 난 가냘프고 싶지 않았다. 다소곳이 바느질하고 수를 놓는 시간이 제일 싫었다. 차라리 망치질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훨씬 좋았다. 순발력이 남달라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난 내가 여자라는 것이 불편하고 싫었다. 평생 여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엄청 억울했다. 그냥 나이고 싶었다. 어디를 가나 나는 여자로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난 여자로 커 나갔다.
어렸을 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뭐가 더 좋은지 아무 생각이 없다. 단지 주위 어른들의 말과 행동으로 남자아이 여자아이로 구분 지어질 뿐이다. 커가면서 남녀가 구분되는 2차 성징들이 나타나면서 아주 확연히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어 버린다. 행동거지도 제한이 생기고 직업도 제한이 생긴다. 아무튼 내가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것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이 싫었다. 동물도 암컷과 수컷으로만 구분할 뿐 호랑이이면 그냥 호랑이일 뿐인데 하물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남녀로만 본다는 것은 기본이 틀렸다. 그때는 어려서 틀렸는지도 몰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제한하는 그런 구분들이 싫었다. 표현할 줄도 모르니 불만 많은 아이처럼 톡톡 발에 걸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걷어차 버렸다. 그것도 여자답지 못하다고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 구분을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습관이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세뇌되어 길들여진 것인가 나는 완전히 여자가 되어 있었다. 여자이면서 사람이고 싶었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인가.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를 구별하기 정말 어려웠다.
수많은 여자들이 특히 종속된 여자로서만 인정하는 결혼 생활에서 독립된 사람이기를 원하고 인정받고자 갈등하고 투쟁한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자식을 낳아 키우지만 사람이기에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여자만 하라는 것은 사람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사회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라 사회가 인정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아내이자 어머니이지만 사람인 것이다.
가만히 보면 남자들은 남자이면서 사람으로 존중받고 있었다. 오히려 여자가 아닌 남자라서 더 존중받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한 것보다 더 많은 플러스 요인이 많다. 가령 예쁜 여자가 못생긴 여자보다 노력을 덜해도 더 많은 칭송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들은 조금만 노력해도 더 많은 가능성과 자유를 주고 있었다. 여자는 아주 많이 노력해야 조금 기특해할 뿐이다. 근거 없는 자격지심이라 할지 몰라도 여자로 살아본 나는 조금도 이 생각을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남녀가 다르게 생겼고 역할이 다를 뿐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여자를 어느 한 부분 소속 물로 여기니 사람인 여자가 여자 되기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아마 여자처럼 남자를 소속 물로만 여기면 핵폭탄이 여기저기 터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나를 여자로 보면 엄청 화가 난다. 여자인 그 속에 내가 없으면 내가 아닌 것이다. 쉽게 조종하기 위해 여자로만 보는 어리석은 칭송은 싫다.
비록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어가지만 먼저 사람이고 싶다. 할머니도 여자이지만 사람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유약자는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키가 큰 여자가 내려다보면 남자들은 뻘쭘해진다고 키가 큰 내 친구가 이야기해주었다. 난 키가 작아서 한 번도 그 맛을 느껴보지 못해 아쉬웠다. 키가 너무 크면 시집 못 간다며 나 어릴 때 여자는 아담해야 된다고 했다. 난 저절로 아담하다 못해 더 작았다. 아마도 남자들이 자기들이 기선제압당할까 봐 돌려 거짓을 주입시킨 것 같다.
자라면서 여자는 어쩌고 저쩌고 해야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아무리 거부해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도 않고 싫어하니 나도 모르게 내가 여자인 것을 싫어하며 살아온 것 같다. 특별히 여자 아니면 어떻게 살 것인지 방법도 모르겠고 버텨낼 힘도 없어서 억울해도 다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인데 사람들은 꼭 여자가 참 참하다며 여자로만 칭찬을 해버린다. 다시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만든다.
그러면서 내 딸이 사회에 나가 불이익을 받지 않기를 원해 나도 모르게 사회가 나에게 그렇게 외쳐댔던 말들을 딸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행히 마음을 조금 열어 놓아 딸이 빡시게 거부하면 받아들인다. 딸을 통해 여자라는 굴레를 조금씩 벗고 있다.
두 가지 성으로만 분리된 세상은 너무나 비좁고 답답했다. 진정 변하고자 하면 마음으로 변해야 변할 수 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딸의 자유가 빛나 보였다. 남과 여의 분리된 잣대로만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바뀌어 가니 편해졌다. 남과 여를 거부만 하던 삶에서 남과 여가 포함된 사람을 보게 되니 좋다. 바윗돌 마냥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회의 인습들도 변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진정 원하면 그 사람이 변하고 그 사회가 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장 변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싫어하던 여자라는 굴레의 시선이 약해져서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할머니라는 굴레를 덧씌워 더 아래로 파묻히고 있었다. 나이 들어 좋은 것이 하나 있다. 굴레를 벗어던져도 좀 괜찮다는 것이다. 어차피 짧은 인생 그까짓 굴레쯤 어쩌랴 싶은데 오랫동안 길들여진 마음의 굴레가 쉬이 놓아지지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으면 홀로 설 수가 없다. 그 사회라는 것이 나를 지원해 주는 옆에 동료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많은 사람이 필요 없다.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나를 인정해 주면 된다. 늙어가면서 오랫동안 나를 여자로만 제한하려는 영감탱이 말고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그 영감이 친구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만 못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소통을 해야 되고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이기 전에 할머니이기 전에 사람임을 본인이 알아야 한다.
나이는 들어가도 어떠한 굴레 속에서 제한받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