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 년간 이어지고 있는 전쟁
결혼 초를 지나 남편과 전쟁이 한창일 때 남편은 내가 제일 무섭다고 했다. 그것도 웃을 때가 더 무섭다 했다. 언제 돌변할지 몰라서 불안하다나. 그때는 내가 무섭다는 그 말이 뭔지 모르게 섭섭하기만 했다. 자기 잘못만 인정하면 될 일을 가지고 딴청을 피우니 돌변할 수밖에 더 있나. 남편은 자신이 권력자 인양 자기만을 존중하기를 바라고 나는 무조건 따라주기를 바라는 행동거지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았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때때로 내가 화를 내기도 전에 더 오버해서 화를 내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맥이 풀려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공격당하기 싫어서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겠지만 문제 해결이 안 되니 나만 속이 끓는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오히려 남편은 더 덤터기를 맞게 된다.
난 내가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당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자기가 공격당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방어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댔나 싶다.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은커녕 피해자 운운하고 있었는데 난 전혀 몰랐다. 저 인간이 바보가 되어가나 아니면 처음부터 바보였는데 나만 몰랐나 할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았고 안 되면 억지를 썼다.
어떤 것으로 트러블이 생겼을지라도 둘이서 갈등한 것은 집 밖으로 내보이지 말자고 제안했다. 주위 가족이나 지인들을 살펴보니 싸우다가 해결이 안 되면 제삼자를 동원했는데 결국 그들은 해결이 아니라 역으로 싸움만 커지고 두 사람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상처 받고 무시되는 상황이 되었다. 싸운 것을 우리 둘만 알고 해결하자고 했다. 만일 친정이나 시댁이나 친구들이 알면 관여하게 되고 일이 커져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정말 의도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니 아무리 힘들어도 둘이서 해결하자고 했다. 부부의 싸움은 대부분 감정싸움이라 당장 눈앞에서는 해결이 안 되는 불구덩이같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사그라져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원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허망한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둘이 싸운 것을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나 보다. 보호자인 부모로서 최소한의 기본도 지킬 줄 모르는 남편이 참 어리석어 보였다. 아들이 중재한다고 나섰는데 둘만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부담지게 만든 것에 보호자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더 났다. 아들은 다른 것 다 제쳐 놓고 딱 한 가지 남자의 자존심을 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존심 하나로 산다나 뭐라나. 고등학생인 아들이 그 말을 하는데 어이도 없고 컸다고 나름 자기주장을 하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여 웃음이 나왔다.
누구든 남녀를 불문하고 자존심은 상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특히 더 남자가 자존심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하니 그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으면 본인이 알아서 잘하든가 내가 자기(남편) 엄마도 아닌데 그것까지 배려하면서 싸워야 되나 하고 혼자 중얼거리긴 했다.
난 성격이 불같아서 화가 나면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남편은 반대로 화를 잘 안 내고 화가 나면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고 독기만 내뿜는 상대와 같이 있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말하지 않고 독기를 품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게 상대를 뒤에서 공격하는 비겁한 행위라며 화났으면 표현을 하라고 했다. 입 다문 남편에게 끝까지 말하라고 물고 늘어졌다. 비겁하게 독기를 나한테 뿜어대며 안 싸우는 척하는 것이 더 잘못된 것이라며 말을 시켰다. 지금은 입 다물고 독기를 뿜어내는 방법은 쓰지 않는다. 아마 비겁하기는 싫었나 보다.
친구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결혼한 남편은 친구들에게 싸운 것을 술김에 이야기했다. 남편 친구들이 전화를 해대며 위로한답시고 자꾸만 나오라 했다. 혼자서 친구들한테 동정받을 코스프레 다하는 남편이 얄미웠다. 창피하기도 하고 나가지 않으면 집으로 쳐들어올 것 같아서 남편과 남편 친구들이 술 먹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혼할 거였으면 이렇게 싸우지 않고 조용히 서류를 내밀었을 것이라고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고 하고 들어왔다. 경험자로서 훈계하고 싶었던 친구들은 그날 이후로 조용했다.
내가 친정에 싸운 이야기 하는 것 보았느냐, 내가 만일 주위에 말했다면 당신은 지금 그 자리에 있지도 못한다고 나한테 감사해하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둘만의 허물은 우리 둘만의 것이다. 밖에 내보이지 말라. 계속 그러면 내가 다 네(남편) 잘못 시댁과 친정과 친구들에게 그대로 까발리겠다’고 하니 그 뒤로는 조용해졌다. 자존심은 이렇게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누가 지켜주고 짓밟는다고 짓밟히는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격지심이다.
어느 방송에선가 아내의 고성이 남편이나 아들의 심장을 강타해서 수명을 줄인다고 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어느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이웃집 아주머니가 히스테릭하게 이른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때 아이를 매번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아 짜증 나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 목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 하이 톤의 짜증 난 소리는 정말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거구나 하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남자의 윽박지름만 힘든 것인 줄 알았는데 여자의 하이 톤도 무서운 거였구나 될 수 있으면 저음으로 말해야 되겠다 생각했다. 마음먹은 대로 잘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략 6천여 년 동안 남성과 여성 사이에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싸움은 말로 시작해서 육탄전으로 끝이 나곤 했다. 그 사이에서 아무런 힘도 없는 우리는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울기 바빴다. 왜 싸우는지 모르겠고 안다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였다. 평화로운 이웃이 부러웠고 전쟁터인 우리 집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난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될 수 있으면 싸움도 하지 말고 우아하게 살자 했는데 그것은 정말 지킬 수 없는 환상이었고 오만이었다. 지금은 우리 집만 싸운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싸운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창피하다는 생각은 좀 줄었다. 싸우게 되더라도 지혜롭게 싸우고 싶었는데 이놈의 감정이라는 것이 폭풍과 같아서 제어가 잘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특히 결혼생활이라는 전쟁터에 들어서면서 알게 되었다.
부부싸움을 아이들에게 들켰을 때 참 난감하고 처참했다. 어찌할 바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부모의 전쟁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나름 타당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어른들 내막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용을 알리기보다는 싸우는 것이 결코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 다행히 두 아이가 아들과 딸이라서 예를 들어 설명하기가 좋았다.
‘너희 둘도 종종 다투잖아. 그런데 엄청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지만 엄마는 다투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의견이 다른 것인데 상대방 의견은 잘못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다 보니 싸우게 되는 거잖아. 단지 다투고 난 뒤에 서로 화해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상대방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그래야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어 조심하고 배려하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다툼은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너희들 세계에서 너희들만의 다툼이 있듯이 엄마 아빠도 어른들 세계에서의 다툼이라고 보면 된다. 부모가 싸운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질 만큼 위험한 상황이 아니란다. 단지 서로 의견이 충돌돼서 감정이 격해졌을 뿐이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 서로 사과하고 위로하면 괜찮아진단다.’
나의 말에 아이들의 불안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 뒤로는 많은 동요를 일으키진 않았다.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은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계속 노력은 했다.
남녀의 성 차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성 차이의 이용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부부간에 남편은 가장이라는 권력을 당연한 듯 소유하고 아내는 보조하고 버려하는 쪽이 되어 수직적으로 아래로 깔리는 정서 때문에 더 많이 싸우게 되는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는 수평적으로 동등하게 시작하지만 아이 낳고 키우며 가족을 챙기다 보면 자신을 잃고 보모가 되어 수직적인 체계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아내들의 분투가 시작되고 남편들의 방어로 전쟁이 진행되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득이 거의 없기에 서로의 이해와 양보가 첨가되어야만 수평적 평화가 돌아온다. 그렇지 못하고 수직적 상하관계를 풀어내지 못하면 의미 없는 전쟁을 하느니 갈라서는 선택을 하게 된다.
‘얘들은 몰라도 된다. 알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외면하셨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불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해는 못해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녀 간의 전쟁이 6천 년에 이르는 전쟁이라는데 내가 어떻게 전쟁을 종료시킬 수 있겠는가 말이다.
피하지 못하면 맞서는 수밖에 없다.
좀 더 지혜로운 전쟁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