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_4

안 잤다

by 오순

공원을 지나가는 중 걷기 운동을 하던 A할머니가 자기 곁을 스쳐 반대 방향으로 가는 B할머니에게 오랜만이라며 말을 걸었다. B할머니는 못 들었는지 계속 걸어갔다. 그러자 A할머니가 몇 발자국 더 멀어진 B할머니를 향해 재차 소리를 질렀다. ‘왜 그렇게 늙었어?’라고. 지나가는 나에게는 크게 들렸는데 B할머니는 작게 들렸는지 아니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응 으 아~’ 대답인지 뭔지를 무신경하게 하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A할머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몸이 안 좋아서 나오지 못했다가 이제 나온 거라는 B할머니 말에 아랑곳없이 A할머니는 자기보다 늙었다는 말을 재차 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A할머니가 더 나이 들고 늙어 보이는데 B할머니 보고 늙었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늙었다는 말은 인사도 아니고 더구나 배려 없는 언행으로 보이는데 B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 거였다. 나 같으면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 한마디 할 것 같은데 두 분 다 서로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두 할머니 사이에는 친밀감이나 배려가 보이지 않고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상대를 깊이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A할머니 말 때문에 두 할머니가 다투거나 언쟁이 좀 생길 줄 알았다. 그런데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듯 감정이 표출되지 않는 거였다. 특히 B할머니가 감정이 제로로 보였다. 왜 일까? 좀 답답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신경이 예민해졌다가 둔해지기도 한다. 젊은 사람은 아프고 나면 밖을 향해 감각이 활짝 열린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이 아프고 나면 감각이 더디게 회복하거나 줄어드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감각이나 지각 능력이 서서히 감퇴하고 있는데 아프면 그것이 더 저하되게 만드는 것 같다.


나이 들면 평소에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잠도 푹 자지를 못한다. 잠이 부족하니 낮에 수시로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낮잠을 자 주어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자고 또 자도 젊은 시절처럼 몸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노인들이 고양이처럼 하루 종일 자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푹 자는 것이 아니라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이지 자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고양이들은 귀가 엄청 크고 소리에 예민해서 아주 초잠(몇 분도 아니고 몇 초씩 잔다)을 자니 수시로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난 휴일이나 특별한 경우 아니면 젊을 때는 하루에 한 번만 잤다. 그런 내가 나이가 들어가니 수시로 누워 있었다. 저녁 잠자리에 누우면 여기저기 더 쑤시고 예민해져 선잠을 깨게 되고 그 뒤엔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 새벽녘에 잠이 들기 일쑤였다. 불면증도 아닌데 몸이 편하지 않으니 잘 수가 없다. 낮에 자서 잠을 못 자는 것이라 하기엔 너무 심하게 잠이 오지 않는 날도 있다.


예전에 쪼그리고 누워서 코 골며 주무시는 할머니에게 들어가 편히 주무시라 하면 안 잤다고 하셨다. 분명 잤는데 왜 안 잤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잔기침을 하는 할머니에게 낮에 자서 잠이 오지 않는 거라고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젠 내가 나이 들어가니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의 잠과 나이 든 사람의 잠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양적으로 잠자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질적으로 깊이가 없으면 별 소용없다는 것을.


유행가 가사에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라는 구절이 있다. 늙음이란 서글프지만 모든 이들이 거쳐 가는 관문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처음엔 늙지 않았다고 열심히 자신을 부정해 보지만 몸이 먼저 나이 들어감을 알려준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나를 무릎 꿇린 세월을 원망해 본다. 그런 나에게 나보다 더 나이 든 지인이 아직 젊어서 원망도 하는 것이라 한다. 실감 나지 않는 ‘젊어서’라는 단어를 나한테 적용하는 더 나이 든 지인을 보며 막막해졌다.


두 다리 성해서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할 수만 있어도 감사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노년이 생각난다. 관절이 노화되고 닳아서 여기저기 쑤시고 성하지는 못해도 누구한테 의지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조심조심 집안에서만 움직이시던 어머니였다. 그러다 어느 날 외출하려고 아들 차를 기다리는 중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냥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고관절이 부러진 것이다.


그 뒤로 회복을 못하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부러진 뼈가 붓기를 기다리며 움직이지 못하니 그나마 남아 있던 근력마저 사라지고 금방 쇠약해졌다. 움직이지 않으니 뼈가 굳어지고 약해져서 다시는 자신의 두 발로 걷지를 못하였다. 정신은 맑은데 걷지 못하고 남의 손에 의지하게 되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엄청 슬퍼하셨다. 간병인이나 간호사나 누군가가 다른 환자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으면 자기 욕을 한다며 말도 안 되는 억측을 토로하시곤 했다.


나이 들면 힘이 약해지고 아파도 근력을 조금이라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넘어지거나 주저앉는 사고가 나도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된다. 어머니는 자신의 다리가 아프고 약해서 넘어지면 다시는 걷지 못할 것 같아 나름 보호한다고 밖에 일절 나가지 않으셨다. 그것이 더 다리의 힘을 잃게 만들어 대형사고가 난 것 같다.


아프다고 겁먹지 말고 더 열심히 남아 있는 근력 손실을 막기 위해 운동을 더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동하면 나아질 거라고 욕심내지 말고 현상유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하라고 어느 코치가 말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이없는 발언이겠으나 나이 든 사람에게는 적절한 충고라고 생각한다. 나아지고 싶은 욕심내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하게 된다. 나이 든 사람의 운동은 생각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어서 효과 없는 운동이라 치부하고 중도에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운동마저 안 하면 주저앉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것을 명심하며 내 마음대로 걷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


나이 든 사람의 운동과 젊은 사람의 운동은 완전 다르다. 나이 든 사람의 잠과 젊은 사람의 잠도 다르다. 나이 든 사람이 안 잤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젠 안다. 잔 것이 아니라 그냥 잠깐 쉰 것이다. 노인의 잠은 무늬만 잠이었던 것이다.


짬짬이 스트레칭하고 짬짬이 쉬고 자야 그나마 하고 싶은 것 짬짬이 할 수 있다.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만 내 보았자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한다. 나이 들어감을 그냥 받아들이고 거기서 내가 유지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내가 젊었을 때는~’하며 아무리 지난날의 금송아지를 꿈꿔봐야 소용없다. 괜히 젊음을 시기하고 어깃장 놓아 보았자 추하게만 보일 뿐이다. 나이 듦을 나름대로 받아들여야 현재의 나머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너 늙어봤냐? 그래 늙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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