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으로 산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동물 중 인간은 두 발은 걷고 두 손은 도구를 이용하면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었다. 동물 중 동물의 왕이 아닌 황제로 등극한 것이다. 태생적으로 가장 허약하게 태어난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면서 지구를 완전 정복한 것이다.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이성을 사용하기 위해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몇십 년을 교육받고 훈련을 한다. 어찌 보면 평생을 교육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 오랫동안 훈련받은 이성을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나 사용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오랜 교육만큼이나 오래 사용하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일까.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나이 들면서 그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이 앞섰다. 그 감정도 기폭이 심하고 조절이 안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감정적인 나를 불편해 하기 시작했다. 이해받을 줄 알았는데 기피하니 더 감정이 치솟았다. 내가 옳음을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내가 보였다.
간혹 전철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불같이 화를 내는 초노년(중년을 넘어선)을 보게 되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조율 못하는 그 사람의 감정과 비슷해져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멈춰야만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절실한 만큼 내가 틀리지 않다고 우기고 싶음 마음도 컸다.
내가 왜 이러는 것인가. 왜 이리 감정적인 것인가. 본래 그랬는데 몰랐던 것인가. 나이 들어 변한 것인가. 나이 들면 다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럼 그동안은 정말 이성적이었던 것인가. 뒤돌아보니 내가 과연 그동안 합리적인 이성으로 판단해서 살았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인간이기에 교육받은 사람이기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나의 이성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과연 나의 이성이 있기는 했었는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라는 것이 있다. 종을 울리고 먹이를 계속 주다가 종만 울리고 먹이를 주지 않아도 개가 반사적으로 침을 흘리게 된다는 실험이 조건반사이다.
사람이 매번 이성적인 판단으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습관처럼 사용하여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한테 해로운 습관(예를 들어 과식이나 흡연이나 게임중독 등)을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치지 못하고 되돌아오게 된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당연히 버려야 하는 행위임에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이 아니라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해야만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 습관을 버리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습관으로 그 습관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다.
그렇다면 과연 각각의 사람은 자기의 이성으로 스스로를 조율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성만으로는 안 되고 실천할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의 광고들이 이러한 조건반사 습관처럼 인간을 길들여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한다. 내가 좋아서 나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선택해서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조건반사에 속아 넘어가는 소비일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서울 가서 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옛날 속담이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이성을 관리하지 못하면 소비를 하는 주체가 아니라 소비를 당하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
이성을 사용하되 습관을 곁들이면 스스로 제어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성보다는 습관이 더 강력하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여태까지 당연한 듯 믿어왔던 나의 일상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신의 이성으로 자신의 습관을 만들어야만 한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감정이 더 많아지고 조율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면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더 이상 노력하지 않게 된다. 사회적 규칙이나 체면을 슬며시 벗어던지고 ‘우짤 것인데’하는 배짱으로 자연인(원시인??)마냥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가만히만 있어도 이 나이에는 옳은 판단을 할 것이고 지혜가 저절로 쌓여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나이가 많을수록 지혜로워진다는 막연한 문화적 습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이가 들면 현명하고 지혜로워지기보다는 노화로 인하여 여러 가지 기능이 떨어지고 둔화되어 판단력도 약해진다. 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미미한 수준이다. 역으로 그 경험이 아집이 되어 새로운 문화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한마디로 인간은 관 뚜껑을 닫을 때까지 이성적이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교육에 졸업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현실 생활을 하기 위한 기술이나 지능교육에 졸업이 있을지언정 이성에는 졸업이 없다. 감정에 침범당하고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서는 끝없는 이성적 교육과 길들일 습관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갈수록 주생활 책임에서 벗어나지 사회에 소속된 규칙적인 시간에서 자유로워진다. 젊을 때보다 훨씬 많아진 시간에 아무런 계획이 없게 되면 무료해진다. 젊어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일들을 나이 들어 시간이 많아지니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만 많아졌을 뿐이다. 몸은 노화되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머리도 역시 마찬가지로 쇠퇴하고 있어 보완하기 바쁘다.
나이 들수록 무료함에 질식되지 않으려면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규칙적인 습관이 하루를 스스로 조율할 수 있게 해 주고 무료함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정해진 시간에 매일 산책을 해서 이웃들이 시계라고 할 정도였다 한다. 자신을 사회가 나이 먹었다고 도태시키고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게 되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다. 사회참여의식과 자기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막연한 이성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스스로 좋은 습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숫자만 보태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이에 맞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백조처럼 끊임없이 발로 헤엄을 쳐야 한다.
긍정적인 습관을 만들어 지켜나가야만 노년이 노년다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