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가볍게 살자
엊그제 눈이 내렸다. 일기예보에 폭설일 거라 했는데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다. 간만에 공원에 가니 하얀 눈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아는 이들과 수다하며 걷기 운동하는 아줌마들, 병석에서 갓 일어난 양 기운 없이 걷는 할아버지,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 중인 여러 견주들과 애완동물들 그리고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낙네, 어딘가로 외출 중인 젊은 사람 등등 많은 이들이 공원을 거쳐 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걷던 나는 갑자기 바람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 바람은 어디서 느끼던 바람일까. 겨울 끝자락에 날씨가 조금 온화해지면 느껴지는 바람은 새벽녘 식어가는 방바닥 같다고나 할까. 완전 냉랭하지도 않으면서 조금의 온기가 남아 있는 바람이다. 지금 이 바람이 무언가 알싸하게 내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갑자기 어린 시절 밖에 나가 놀 때 느꼈던 그 바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놀기 바빠서 추운데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추위에 손이 얼어 손등이 갈라져도 아픔을 크게 느끼지 못하였다. 저녁에 엄마가 데워 준 뜨거운 물에 손등을 불려 둥글둥글한 돌로 문질러 씻고 안티푸라민(내가 어렸을 적에는 이것이 만능 약이었다. 냄새가 좀 고약해서 그렇지 효과가 좋았다. 지금은 많은 약품과 다양한 화장품이 나와서 이것을 쓰고 있지는 않다. 지금도 나오는지 검색을 해 보아야겠다.)을 바르고 자고 나면 다음날은 손등이 좀 부드럽고 며칠간은 괜찮았다.
검색해 보니 안티푸라민은 수입 약에만 의존해 오던 열악한 우리나라 환경에 수입 약 비싸 못 사는 서민을 위해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만든 1호 약이라 한다. 안티푸라민은 저항, 반대를 뜻하는 안티(anti)와 염증을 뜻하는 인플레임(inflame)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말 그대로 염증 치료제란 의미이다. 안티푸라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브랜드가 간호사 그림을 심볼 마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름이 한글이 아니어서 수입이라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되었다.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지금 나는 무지 힘들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데 걱정이 앞서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너무 나이 든 것 같고 너무 열정과 에너지가 부족한 것 같아 한탄만 하고 있다. 지금이 지나면 알게 될까. 지금이 좋았다는 것을.
과거보다는 현재가 좋으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현재를 즐기고 싶은데 걱정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 걱정은 거의 99%가 쓸데없는 것이라 한다. 걱정을 덜어내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 아마도 두려워서 걱정이 많은 것 같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나는 뒤로 미루고 있다.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 되겠다. 걱정으로 하루를 끝내고 마치고 싶지 않다.
바람처럼 그냥 불고 싶다. 바람처럼 그냥 지나가고 싶다. 바람처럼 살아 보자. 바람이 걱정으로 무거워지면 바람이 될 수 없겠지.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불안 치워버리자. 내 앞에 닥친 현재만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