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

합장하는 마음

by 오순

80년대 대학가에서는 부도덕한 설립자 동상을 철거하라는 데모가 종종 있었다. 동상뿐만 아니라 학내에 설립자 묘지까지 자리한 경우도 있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입학하였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럭저럭 머리 하나 믿고 공부를 대충 하였다. 시골에서는 우등생이지만 서울에서는 그저 그런 실력이어서 일류대는 아니고 삼류 정도의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노력파가 아니어서 실력이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특별한 목적의식도 없어서 대충 나온 점수에 대충 합격한 학교를 대충 다니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자랑스러운 대학생일지 몰라도 난 사회 도피처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시골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드렸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갑자기 설립자 동상을 향해 합장을 하시며 기도를 하셨다. 깜짝 놀란 나는 아는 사람들이 볼까 봐 창피하기도 하고 만류하기엔 어머니의 진지한 모습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간신히 교내를 둘러보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늦게 얻은 아들 하나만을 위해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맞았구나 하면서 그동안 반항하며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계모가 아닐까 의심했었나 보다. 계모까지는 모르겠으나 나한테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어머니의 그 진지한 모정을 인정하기에는 그동안의 나의 반항들이 설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는 어머니의 모정이 따스하게 스며 들어왔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대학 학비는 엄청나게 비싸다. 특히 사립대는 국립대보다 더 비싸다. 시골에서 대학생을 내려면 논밭을 팔든가 기르는 소나 돼지를 팔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학비를 어떻게 마련해 주는지에 대해 난 무심했다. 아니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했다. 항상 절약하고 아끼며 다그치는 어머니의 고단함이 싫었는데 그 절약과 노력 물을 내가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 무거운 마음마저 회피하기 바빴고 미안한 마음에 설자리가 없었다.


어떤 피나는 노력 없이 남의 노고 위에서 빈둥거리는 나는 항상 불안하고 자신이 없어 방황하고 있었다. 졸업하고 사회 속에 들어가기 위한 어떤 목표도 없이 방랑자 마냥 이리저리 헤매고만 있었다. 답도 찾지 못하고 나 자신도 찾지 못하면서 연로해 가는 부모님의 노고를 빼먹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너무 척박해서 그 괴리를 견디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이 싫었다. 그런 나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회피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아무런 스펙도 노력도 없는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백수로 일이 년을 버티다가 더 이상 손 내밀 데가 없어서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책 읽길 좋아했던 나는 책을 만드는 아주 작은 곳에서 생활비를 벌었다.


자식을 낳아 키워 보아야 부모 마음을 조금 안다 했던가.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다. 난 자주 부모님 생각을 한다. 생각하면 꿈에 생전 모습을 보게 된다. 말로 구체적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사랑은 항상 있었는데 난 너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었다. 나를 다그치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했었다. 이제는 안다. 최선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는 것을.


나도 자식 둘을 낳아 키우고 있다. 키우는 내내 합장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기도하고 있는 내 마음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키워낼 수 없음을 안다. 세상 속에서 모든 이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고 있다. 자식을 낳았지만 부모 둘만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협조와 분담이 있어야만 한 생명을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과 더불어 자식을 키워낸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마음을 바다처럼 열어 세상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탤 수밖에 없다.


아마 어머니의 기도도 나의 이 마음과 같았으리라. 그때 회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포용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후회도 해 본다. 하지만 자식은 자식이기에 그때로 돌아가도 자기 입장 고수하기 바쁠 게 뻔하다. 지금의 내 자식들처럼 자기 앞길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효도이며 그들의 삶이다. 부모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 주어야 부모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거리가 생길 때면 가끔 서운하기도 하지만 부모이기에 그만큼 컸다는 뿌듯함이 더 크다. ‘내 할 일 다 끝나가는구나!’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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