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어릴 때는 꿈이 무엇이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어른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지금 내 나이 벌써 오십이 한참 넘은 어른이 되어 있다. 지금은 그런 미래를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궁금한 나이가 되었다. 꿈과 희망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큰 꿈을 가져야 위대한 사람이 된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로 대통령이나 장군이라 했다.
대통령이나 장군이 위대하거나 막강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여서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희망을 듣고 탄복하는 어른들의 그 표정과 그 눈빛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어떠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장군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는지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고 선택한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군을 선택하면 어른들은 진짜 대통령이나 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입빠르게 내뱉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른들의 칭찬을 받고 뿌듯해하는 그 아이는 내가 보기에 그저 배만 나온 배통령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그 아이 따라서 나도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겠다고 흉내 내기는 싫었다. 딱히 아는 것도 없고 꼭 뭐가 되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기에 대답하기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내 바로 위의 언니는 노래 부르는 것이 재미있는지 가수가 되고 싶다 하였다. 내가 보기엔 그것이 좀 현실감이 있는 희망처럼 보였지만 어른들은 가시나가 바람이 들어가면 안 되다며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다.
난 세상사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맨 날 싸우는 동네 이웃들과 부모님을 보면 세상사는 것이 무지 힘들어 보였다. 매일 일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부처님이 싯다르타 왕자 시절에 산책을 나왔다가 늙고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여 안락한 궁을 떠났다 한다. 나는 그 힘들어 보이는 것들을 피해서 산속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사람들을 피하면 그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절에 들어가고 싶다 생각한 것이지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어서 오라고 너를 반겨줄 사람이 있나?’하는 어머니의 현실적인 질문에 그 희망은 폭삭 사그라지고 말았다. 도피할 곳이 없다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긴 했었다.
지금은 원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서 키우고 나이 들어가고 있다. 어떤 큰 희망이 없어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사는 것일까 하고 간혹 현타가 오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들어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정신도 조금씩 무너지는 게 느껴진다. 나이 들어도 희망을 가지면 안 될까? 하고 싶은 것은 있어도 그것이 희망이라고까지는 못할 것이다. 단지 소일거리밖에 안 되는 현실이 답답하다. 바늘을 만들기 위해 쇳덩어리를 바위에 갈고 있는 노인처럼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
백세 시대라 하지만 자기 주도적인 나이는 얼마나 될까? 희망을 놓지 않으면 자기 주도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노인에게 가장 힘든 것은 시간이 아니라 무료함이라 한다. 나이 들어갈수록 자유시간은 넘쳐나도록 많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죽기도 전에 무료함 속에 파묻힐 것이다.
장수시대에 나이 든 사람에게 희망은 동아줄이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희망을 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경제력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도 나는 결과를 셈하지 않으려 애쓰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한 발자국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