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방

넘쳐나는 시간

by 오순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라는 수필집에서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경제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데 방해받지 않을 독립된 공간과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면 여성도 셰익스피어 버금가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돈 걱정이나 하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방해받는 공간이 있다면 자기 분노에 빠져 글 다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 혼자만의 방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다 함께 쓰는 것이 방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다. 사춘기가 지나서 청소년이 되면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그러다 결혼하고 변변치 못한 살림에 내 공간은 따로 없었다. 안방은 부부의 공간이고 아이들 방은 아이들만의 공간이었다. 당연 거실이라든가 남은 공간은 가족 모두의 공동의 공간이었다. 뒤늦게 이혼하고서야 나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나만의 방에 오롯이 있게 되었을 때 뭔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뭔가 빠진 듯 허전하고 나 혼자 독차지한 뻐근함이 밀려왔다. 제일 먼저 한 것이 좋아하는 책을 침대 위에 펼쳐 놓았다. 한 장을 다 못 읽고 잠을 잤다. 자고 또 자도 잠이 왔다. 그렇게 며칠을 잠만 자다가 인터넷에서 드라마를 다운로드해 내리내리 보았다. 계속해서 퍼내어 써도 펑펑 남아돌아가는 시간들이 내 방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게으르게 나뒹굴고 있다며 누군가 눈치를 주는 이가 없어 좋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았기에 갑자기 푹 퍼진 것이다. 삶에서 어떻게든 이탈되지 않으려 버티며 살아왔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길고도 고달팠다. 내 젊음을 다 가져가 버렸다. 지금은 쭈그러지기 직전의 노년만 남은 것 같았다. 가을바람에 바스러져 가는 갈대처럼 시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방에서 아무것 하지 못하고 나머지 시간마저 다 말려버릴 기세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만 쉬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에서 글을 쓰거나 보여줄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앞으로 살아가야 나의 인생을 위해 나만의 방에서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충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충전의 시간은 길게 길게 늘어졌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고뇌도 깊어갔다. 보이지 않는 나의 앞날에 우울해지고 가라앉았다.


헤매는 내게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더불어 가고 싶어 졌다. 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만의 방에서 아직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고민하는 만큼 깊이가 생길 것이고 질문하는 것만큼 답을 찾는다 했다. 세상에 주어진 길을 똑같이 따라가던 방법을 멈추고 내 길이 맞는지 물어가며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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