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저씨의 장구춤
예전 어렸을 적 시골 동네에서는 명절에 음식을 장만하고 명절 밤이면 동네에서 제법 흥이 있고 재주가 있는 남자 어른들이 모여서 꽹과리, 징, 장구, 북 등을 치면서 집집마다 찾아가 복을 빌어주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모정이라는 곳에 모여서 다시 흥을 돋우고 음식을 먹었다.
어린 시절 난 구경하는 어른들 틈새에 끼여서 남자 어른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중에서 바보라 불리는 아저씨가 치는 장구춤은 정말 신명 났다. 그날만은 모든 동네 아낙들이 그 바보 아저씨를 바보로 보지 않았다. 평소에는 실없이 헤헤 거리며 지능이 모자라 바보라 불리던 그 아저씨가 그날만은 모든 동네 아저씨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 바보 아저씨는 뭐가 그리 신명이 나는지 벙실거리며 장구춤을 추고 있었다. 그날만은 그 아저씨 홀어머니도 당당히 나와서 아들의 신명 나는 장구춤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며 뿌듯해했다.
평소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안 되는 바보였던 그가 장구춤을 추는 그날만은 멋진 남자로 변신해 있었다. 홀어머니가 지어준 연한 하늘색 모시 한복을 입고 장구와 하나가 되어 신명 나게 돌아가는 그의 춤사위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몇 년 뒤 그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그 장구춤을 다시는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지금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보고 싶은 것을 찾아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보는 것과는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 그 아저씨는 하늘나라에서도 장구춤을 추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바보 아저씨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공인은 아니었지만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 기억되는 이들이 몇몇 있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그들만의 세계가 나만의 세상을 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모두가 교과서처럼 정해진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은 색다르고 멋져 보여 세상을 내 식대로 살아보고 싶게 해 주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세계가 획일적인 세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서로 간의 다름을 배타가 아닌 받아들임으로 인정하게 해 주었다.
호랑이는 세상에 태어나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 아저씨를 모두들 바보라 무시했지만 장구춤 하나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비록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쨌든 누군가 기억해 주는 이름을 남겼으니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역사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기억해 주는 이가 있어 그 바보 아저씨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간 것이다.
젊어서는 영원히 젊게 내 맘대로 살 것 같아서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살았다. 나이 드니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고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냥 가기에는 내 삶이 너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워지고 우울해졌다. 성급한 마음에 노력은 하지 않고 생각만 앞서가고 있었다. 굳이 세상에 뒤흔들 이름이 아니라면 그냥 잔잔하게 나답게 살고자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