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살 것처럼 살아
어렸을 적 명절 상을 차릴 때 어머니는 우물가와 장독대에도 음식을 조금씩 차려 놓고 무언가 기원하였다. 궁금하여 물으니 삼신할머니에게 음식을 드리고 잘 봐달라고 하는 기도라 하였다. 어머니의 기도가 끝난 뒤 몰래 삼신할머니 음식을 조금 먹어 보았다. 내가 먹는 음식이랑 같은 것이었는데 맛이 없었다. 옛말에 제삿밥은 귀신이 와서 먹은 것이라 보기에는 멀쩡해도 속이 비어서 영양가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맛이 없었나.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미신에 매달리는 것 같다. 특히 삶에서 우리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을 때, 한마디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해지고 두려워진다. 그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미래를 미리 알아서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 마술이나 미신이 예언해 주는 것에 기대어 안정을 되찾고 싶어 점을 보러 가거나 타로점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일시적이나마 내 통제권을 벗어난 불안한 삶을 내식대로 통제하여 편안해지고 싶은 것이다.
미래에 가서 살아보지 않는 이상 과연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을까? 그러나 미리 가서 살고 있다면 그건 미래가 아니고 현재인 것이다. 미리 알고 있는 미래를 산다는 것이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미리 안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을 복습하여 사는 것이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닌 복사판 삶을 사는 가짜 삶이 아닐까?
그리스 신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불행한 운명이라며 점쳐진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피하지 못하고 운명 지어진 대로 자신의 운명을 처절하게 맞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 그 주인공은 이미 정해진 불운한 운명이어서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계속 불안해하면 정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경험이 있다. ‘그럼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하고 자신의 불안증을 확신하며 믿고 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좋지 않은 결과로 결정된 것이었을까? 그렇게 결정된 것이라면 구태여 그 일을 잘해 보려 시도할 필요가 있을까? 이건 아닌 것 같다. 좋지 않을지 모른다는 끊임없는 생각이 모여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불안하고 힘들어도 잘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 잘 되는 것처럼 마음이 어느 곳을 향해 힘을 모으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지 이미 정해진 일이라는 것은 없다.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과거이지 현재나 미래는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전개될지 신비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는 태어나면 죽는다는 결과를 알고 있지만 살아가는 과정을 모르기에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태평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과정까지 다 알고 있다면 뻔한 그 삶을 누가 반복하고 싶겠는가? 정해진 삶이라면 누군가 그 삶을 정한 것이고 그자에 의해 내가 살아야 된다는 것인데 그런 삶은 꼭두각시 삶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조종당하지 않는 자신만의 자유의지로 살고 싶어 한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수많은 마술과 미신을 신앙처럼 의지하고 살아왔다. 미약한 인간이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을 마술이나 미신에게 맡기고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아침부터 재수 없네’, ‘부정 탄다 조심하라’, ‘꿈자리 사나우니 밖에 나가지 마라’ 등 같은 말을 자주 쓴다. 이 말은 하루가 부정적으로 이어질까 봐 염려하는 불안한 마음이다. 젊은 층일수록 ‘그것은 미신이다’, ‘난 그런 것 믿지 않는다’ 등으로 자신감 있게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자신감이다.
미신이나 마술이나 종교나 다 인간을 위한 도구라고 본다. 불안한 인간의 마음을 달래주고 안정시켜 삶을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단지 그것을 지나치게 신봉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하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사건사고가 발생하여 심하게 휘청거릴 때 달려가는 곳이 미신이고 종교이며 신에게 매달리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동물 인척 큰소리치며 살다가 힘들어지면 무언가에라도 매달리는 인간이 간사하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살기 위한 나약한 인간의 강한 몸부림이며 의지라고 본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 세상을 절대 살아갈 수 없다. 그 무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지프 신화에 시지프스가 산 위로 커다란 바위를 끌어올리면 그 바위가 산 밑으로 도로 굴러 떨어진다. 떨어진 그 바위를 시지프스는 다시 끌어올린다. 그렇게 끝없이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인간의 일상도 끝없이 반복된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낸다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오늘도 싫증 내지 말고 하루만 살 것처럼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