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 시대

몸을 갈아 입다

by 오순

중국 사극이나 무협드라마를 내리 연속적으로 보다 보니 결계란 말이 자주 나온다. 결계란 원래 불교 용어로 불도를 수행하는 비구의 과실을 적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을 제한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그러나 무협드라마에서 사용되는 결계는 뜻이 다르게 사용되었다. 무협드라마에서 결계는 무예의 고수나 주술사가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고 행동을 제한하거나 이동을 차단시킴으로써 상대방을 제압하는 마술과 같은 힘으로 사용되었다. 한마디로 강력한 내공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평생을 배우다 간다. 일어서서 걷는 것과 같은 배움은 다른 배움에 비해 배우는 기간이 비교적 짧다. 말하는 것을 배우고 글쓰기를 배우고 자연법칙과 사회법칙을 배운다.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의 문화역사 속에 쌓인 수많은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어림잡아 기본교육이 십 년 이상은 된다. 분명 십 년 이상을 읽고 쓰는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은 항상 어렵다. 말하는 것도 배우고 읽혔지만 대중 앞에서 내 의견을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전문가 아닌 이상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 한다.


국어, 수학, 역사, 사회, 지리, 외국어 등등 최소 십 년 이상의 긴 시간을 우리는 배우고 익힌다. 그렇게 익힌 배움을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 백세 시대라 하는데 백 년에서 잘해야 삼십 년 정도 사용하는 것 같다. 요즘은 어느 정도 배움이 끝나면 20대 후반이니 정년퇴직 전까지 대충 계산하면 30여 년이 되는 것 같다. 그 이후에는 노화나 치매에 의해 기억력 감소 현상으로 끝없이 반복적으로 다시 주입해 보완해야 되고 그 주입된 지식은 주입되자마자 사라지는 경우가 과반 이상이라 아마 반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거의 20여 년을 공부해서 30년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니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현대 인간은 10~20년 가까이를 배우는 데 사용한다. 이 배움의 기간은 백 년 인생에 비해 너무 길다. 꼭 이렇게 긴 시간을 배워야만 되는 것일까? 이렇게 긴 시간을 반복적으로 배워야만 된다면 인간의 두뇌 성능이 과연 월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을 노화로 하나씩 잃어가다 죽으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평생 쌓은 지식을 죽을 때 반납하고 가면 그 지식을 저장했다가 태어난 다른 인간에게 투입하면 처음부터 배우지 않고 받은 데서부터 더 공부하고 싶으면 더 하고 그것만 가지고 살고 싶으면 공부하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 사회에 투입되어 활동한다면 사회적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절약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보면 짧은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무협 드라마에 보면 몇십 년 동안 훈련하여 쌓아 온 무공을 다른 이에게 전수하기도 하던데, 지식은 그렇게 물려줄 수 없을까?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경제활동을 좀 하다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그 지식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자식들이 커가면서 나와 같은 기나긴 과정을 거쳐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보니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꺼내서 자식 머릿속에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사용하지 않는 지식들이 많은데 새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습득하려 애쓰는 자식을 보니 내 지식을 전수해 줄 수만 있다면 넘겨주어 자식들의 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 주는 것이 더 효용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과학이 더 발달하면 기억을 넣었다 뺏다 하는 영화 속 마법사처럼 지식도 넣었다 뺏다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과연 효율적인지는 그 시대를 살고 경험해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몸에 노화가 오기 시작하면 새 몸으로 갈아타고 싶어 진다.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서 입듯이 어느 동화에서처럼 몸도 입었다 벗었다가 가능할까. 그런 것들이 가능해지면 백세시대가 아니라 천세 시대가 오지 않을까.


어른들 말처럼 오래 살고 볼일이다. 오래 살면 별의별 것 다 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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