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효과
한낮이다. 햇볕이 좋아서 공원 벤치에 앉았다. 내 몸에 내려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다. 바람이 살랑거린다. 공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어 아이들이랑 어른들과 청소년들의 몸놀림과 소리들이 다양하게 뒤섞여 들린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움을 피하기에는 벤치의 햇볕이 너무 좋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방해받는 기분이 들어 사람들을 뒤로한 채 돌아앉았다.
그런데 뜻밖으로 사람들과 나 사이에 벽 하나가 생겨 공간을 분리라도 해주는 듯 소란한 소리들이 좀 멀어졌다. 같은 곳에서 단지 등만 돌렸을 뿐인데 그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게 되고 눈으로 직접 보지 않게 되니 시끄러운 소리들이 멀어졌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곤두섰던 나의 신경이 안정되었다. 신기한 효험이었다. 대중 속에 혼자만의 공간을 선물 받은 듯했다.
사람의 시각이 이런 효과를 내기도 하는구나. 보면서 듣는 것과 보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니 놀라운 경험이었다. 만일 사람에게 본래 눈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물론 장애로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예외로 한 가정이다. 후각과 청각 등 다른 감각들이 더 진화되고 발달되어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나가 부족하다고 해서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기능들이 부족한 하나보다 더 나은 기능을 발휘하지는 않을까? 과연 인간에게 눈은 축복일까 방해물일까?
사람의 갓 태어난 아기는 사물이나 색 구별을 못한다고 한다. 아기가 점점 자라면서 보는 것이 많아지고 다양한 색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타고난 눈이 있어 잘 볼 수 있다기보다는 교육에 의해서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두 눈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시각이 본 많은 것들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될까?
뒤돌아 앉기만 함으로써 보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지는 않았을까? 쓸데없는 것 보지 말라는데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니 보지 않기가 어렵다. 보아야만 쓸데 있는 것인지 쓸데없는 것인지 알지 알겠는가. 어른이 되면 보고도 못 본 척해야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척도라 생각해서 하는 못 본 척이겠지만 이미 본 것을 모른 체만 할 뿐이지 머릿속에는 이미 각인이 되어 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려면 입도 봉해야 된다. 이 두 가지를 봉하려니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이다’라고 갈대밭에 가서 소리친 옛날이야기 속 주인공 심정이 이러했으리라. 우리의 신체는 보면 말해야 되고 말하면 들어야 되는 순환구조이다. 웬만큼 내공을 키우지 않은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맹인은 보지 못하는 대신 시각을 보충하듯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한다. 그 예민한 감각들이 비록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눈이 되어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오히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더 잘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보긴 보는데 겉만 훑어본 것이다. 그것은 본 것이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나간 것이다. 사람이 본다고 할 때는 눈으로 보고 마음까지 와 닿아야만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보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는 사람을 볼 때 눈으로 보면서 그 사람의 기색까지 살펴본다. 한 마디로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속내까지 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을 볼 때는 대부분 겉만 본다. 보는 것도 여러 단계 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볼 때에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대화가 가능해진다. 마음까지 보아야 서로를 알 수 있다.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인도의 신 ‘시바’는 양미간 사이에 눈이 하나 더 있다. 사람은 두 개의 눈 이외에 마음의 눈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마음으로 보는 눈이 시바의 양미간 사이의 제3의 눈이 아닐까.
눈에는 마음으로 보는 눈과 육체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 있다. 마음의 눈만 조절하면 될 줄 알았는데 육체의 두 눈도 알게 모르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내 몸이니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내 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비한 내 몸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