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어떤 이들은 산에 오르는 것을 보고 사서 고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서 고생’이라는 말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사서’와는 다른 의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사서’는 돈을 주고 산다는 의미의 사서이다. 젊어서의 고생은 귀중한 경험이 되어 삶의 내공이 되어주는 자산이니 사서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서 고생’이라는 ‘사서’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하는 무가치한 행동을 의미이다. 한마디로 편하게 집에서 쉬는 것이 더 좋을 텐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힘들게 산에 오르는 고생은 헛짓이라는 비난성 의미이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정말 ‘사서 고생’이 다일까? 우리는 왜 산을 오르는 것일까? 힘든 것 뻔히 알면서도 몇 번이고 산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사서 고생하는 어리석음일까? 어차피 고생해서 산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뭐 하러 올라가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게 산에 올라가면 특별한 보물이라도 있나 왜 올라가는 것일까? 보물이 있었다면 벌써 소문나서 산은 이미 보물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황폐해져 산이라 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인데 아직도 산은 산으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 보물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혹 다른 이들의 눈에 띠지 않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헉헉대며 산을 오르는 중간에 ‘내가 왜 산에 또 왔을까’ ‘너무 힘든데 그만 내려갈까’도 생각한다. 한 발 한 발 산에 오르면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어갈 때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상쾌함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다리가 퍽퍽해질 때 잠깐 멈추고 숨만 돌려도 기력이 금방 회복되어 신기하게도 내려가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을 택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도 상을 주거나 먹을 것을 주거나 하는 어떤 보상이 없다. 그래도 끝까지 올라가면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인다. 세상을 프리허그라도 하는 양 두 팔을 벌리고 소리치게 된다. 야~~ 호! 산이 나를 부른 것도 아닌데 매번 올라와서 소리치니 시끄럽다 할지 몰라도 나는 산이 반갑다. 오지 말라는 말은 없기에 내 맘대로 산에 온다. 산에 오르면 내 속에 쌓여있는 스트레스가 말끔히 날아가 버린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내 발이 좀 고생해서 산에 오르면 내 마음이 편해진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욕망들과 스트레스들이 산에 들어서면 사라진다. 비록 다시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욕망들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겠지만 그러면 다시 산에 가면 된다.
그러면 그렇지. 얻는 것이 있으니 그렇게 많은 이들이 산에 오르는 것일 게야. 산에서 받는 것이 각각 다르겠지만 산을 오르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선물을 그득 안고 내려왔던 것이다. 보이는 육체의 고생이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특히 보이지 않는 것은 스스로 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소용없다. 백문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직접 겪어보아야 체험할 수 있다.
산에 오를수록 나무 하나하나에, 풀 한 포기에, 낙엽 하나에, 새 한 마리에, 미미한 곤충 한 마리에게까지 다 감사함이 느껴진다. 산의 공기, 바람, 그늘, 햇살 등등 산이 무한정 내가 주는 선물들이다. 그들 모두가 다 있어야만 산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산이 존재해야 언제든 내가 산에 올 수 있다. 가슴이 뚫리고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는데 어찌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겠는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랫동안 산에 오르지 못했다. 산에 올라 두 팔 활짝 벌리고 상체를 뒤로 젖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나무 꼭대기와 그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그렇게 크게 숨을 들이켜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몰라도 살랑거리는 바람 따라 내 가슴속에 슬며시 스며들던 산 공기의 상쾌함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