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간의 영역 존중
나이가 들면 공기 좋은 시골에서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소소하게 손수 재배며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그리고 좀 더 여유가 있다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한다. 봉사는 여유로울 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손수 짓는다는 것은 올인을 해야 한다. 생각보다 시골생활은 부지런한 몸놀림을 필요로 한다. 낮잠 자다 생각나면 채소밭에 가서 잡초를 뽑는 것이 시골 농사가 아니다. 잡초제거도 채소 재배도 다 때가 있다. 자신에게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농사에 맞춰 살아야 한다. 스스로 다 해야 한다면 시골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다.
재취업에 성공해서 이제 겨우 며칠 적응하고 있는데 나이 든 직장 상사가 자기만의 거한 계획인 양 봉사할 삶을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대화가 아닌 자기만의 고상한 생각을 자랑하는 것이 영락없는 꼰대 기질을 내뿜고 있다. 상사의 사담을 듣는 중에 내 영혼이 이탈하는 게 느껴진다. 자기 이야기를 듣다 마는 것이 느껴지는지 상사가 주춤하는 것이 보인다. 멈출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조금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처음부터 사소한 것까지 맞춰 주고 싶지는 않다. 큰 것들에 적응에 가는 것도 힘든데 작은 것까지 내주면 설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꽁하고 있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자꾸만 간 보려고 테스트하는 것이 느껴져 좀 성가실 뿐이다.
비록 한 회사에 근무하지만 직종이 다르기에 회사 상사일 뿐 직속상관은 아니다. 그러기에 그 어느 중간쯤에서 서로를 존중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위에 상사로 인정받고 싶은지 자꾸만 내 주위를 서성거리는 게 느껴진다. 업무가 달라서 30프로 정도만 공유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각자의 일이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위에 설 명분이 없다. 저러다 말겠거니 나만 거리 유지하면 되겠거니 하고 있다. 본인이 쓸데없이 직계 상사 인양 시도하다 안 되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내 탓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만일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진짜 그 상사는 존중을 못 받게 될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한 회사에 오래 다녔다고 다 박학다식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현명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하는 말이 엄청 중요한 것처럼 밑줄 그어야 되는 것처럼 강조하며 기다랗게 이야기하고 있는 상사를 지켜보는 것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어디서 화제를 돌려야 될지 생각을 잘해야 한다. 자꾸만 자기만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그를 나중에는 피하게 될 것 같다. 이미 남들이 수없이 떠들고 미디어에서 수없이 본 웰빙의 삶을 새로운 소재인 양 자기만의 것인 양 떠드는 것을 듣는 것도 고역이다. 어디서 들었다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으니 더욱더 답답하다.
자신의 살아온 기나긴 삶이 지혜의 대사전이라도 되는 양 아직은 짧은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가벼워 보이는 것인지 계속 훈계성 멘트를 날리고 있다. 젊다고 지혜가 없다 할 수 없고 나이 들었다고 지혜가 충만하다고 볼 수 없다. 지금 현재 세상을 향해 이성과 오성을 열고 있어 소통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나이 들면 자신의 경험을 최고로 여겨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 이미 자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다른 것들을 알려고 하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리되면 세상과 소통이 막혀 버린다. 세상과 불통하는 원인을 자신의 아집에서 찾지 않고 세상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 분노를 터뜨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이 들면 경험의 무게를 자꾸 덜어내야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경험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기가 버거워진다. 나이 들면 가벼워지도록 자신의 짊을 줄여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경험에 대해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