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침해
길거리에서 분장한 배우가 팬터마임을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관람하고 사진도 찍는다. 자신을 잊고 타인의 시선 위에서 줄을 타듯 연기하는 배우가 멋져 보인다. 그 배우는 자기가 의도한 대로 자기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배우의 연기가 끝나자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는 것도 신경 쓰이고 꺼려져 멀리 떨어져 보던 나도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었다.
대중 공포증인지 무대 공포증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대중 앞에 서면 머릿속이 백지가 된다. 나를 느낄 수가 없다. 내가 무어라 말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사람들 눈동자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피한다. 사람들 앞에 서면 조율이 안 되는 내가 무슨 실수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너무 긴장해서 떨고 있는 모습을 들킬까 봐 겁이 난다. 강한 척하며 살아왔는데 더듬거리는 소심한 모습을 들키기 싫다.
대중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게 말을 잘하는지 부러울 정도이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을 연습할 기회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은 일부러 학원에 가서 연설하는 기술을 배우기까지 한다. 아마 난 배워도 대중 앞에 서지 못할 것 같다. 난 모르는 사람들 눈에 띄는 것 자체가 싫다. 많은 사람들 시선을 받으면 내 행동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얽혀들지 않고 스쳐가듯 살아가는 대도시가 좋다. 소도시나 시골에 살면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 지까지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요즈음은 많이 개인주의화 되어서 옛날보다는 덜 하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일은 소문으로 알게 된다. 사람들의 그런 소문과 판단이 싫다. 그냥 내 행동은 내가 책임지고 싶지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받거나 눈치를 보며 행동하고 싶지 않다.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 싶다.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도 왕이 국민들 앞에서 말을 더듬는 고통을 다룬다. 왕으로 길러진 사람도 이러할진대 미미한 개인이 대중 앞에 선다는 자체가 버거운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는 자신의 PR시대이다. SNS에 사람들은 너무 노출되어 의도치 않은 사생활 침해가 발생하고 때론 극심한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누구든 대중 앞에 벌거벗겨지는 것은 싫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해 줄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동물도 그러하지만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하다. 대중 앞에 서면 그 최소 공간이 노출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당황스럽고 긴장되고 피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난 소수의 사람들과는 잘 소통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나는 대중 앞에 서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편하다. 하긴 학창 시절 발표할 때 빼고는 지금 내가 대중 앞에 설 일은 거의 없다. 어떤 이들은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긴장을 즐긴다 하는데 난 그럴 수가 없다. 즐기는 것도 내공이 쌓이면 가능하려나. 굳이 즐기고 싶지 않다. 아마 나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노느라 드넓은 무대에는 올라서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내 삶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