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의 평온
관심이 없으면 감정도 없다. 감정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 괴로움이 없으면 욕망도 없다. 욕망이 없으면 원하는 것도 없다. 진정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인가. 원하는 것이 없으니 평온하다. 이런 무지에서 오는 평온은 배부르고 등 따신 돼지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수시로 움직이고 변동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고정되어 있는 책상과 같은 존재성이다. 이것을 원하는 것인가?
사람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죽은 자는 그저 시체라는 물체일 뿐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변화가 없는 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을 느낀다면 살아 있는 것이다. 고통은 주체가 자신의 기준이 있어 거기에 부응하지 않는 객체와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만 고통을 부정하기 때문에 당연한 과정 속에 일어나는 것을 없애버리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장애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고통을 피하려고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마음을 없애 버린다면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것이다. 고통도 무조건 피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표이기에 더불어 가야 한다.
오늘 나는 너와 대화를 하다가 화가 났다. 점잖지 못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후회가 된다. 우아하지 못한 인격이 드러난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 있어 생기는 것이기에 부정하거나 회피할 필요가 없다. 나의 이 모든 감정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정하면 내가 아니다. 받아들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조율하면 된다. 싫거나 부끄러운 것은 무조건 없애버리거나 아닌 척하려 하는 데 그것은 방법이 아니다. 그리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용납할 수 없다.
감정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감정은 관심이다. 무관심은 죽음이다. 화를 내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적절하게 화를 내는 법을 배워나가야 하지 무조건 화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없애지지도 않지만 적절한 방법도 아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다 받아들이고 알아야 스스로를 조율하여 살아갈 수 있다.
대부분 부정과 긍정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둘 다 내 안의 것이기에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이분법이 맞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두 가지 다를 안고 있어 나는 하나이며 둘이다. 앞으로 난 화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한다. 기쁨도 나의 것이지만 화도 나의 것이기에 거부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