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순자 Jun 20. 2024

물물교환과 깨달음

최순자(2024). 물물교환과 깨달음.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6. 20.


“보리수 좀 따가세요. 남은 것 모조리 따세요. 저희는 지난번에 잼을 만들었는데, 맛있더라고요.”


날씨가 더워 잔디가 비실비실해 해가 진 뒤 어둑할 때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옆집 마당에 나와 있던 분이 한 말이다. “네 내일 딸게요.”라고 했다. 혹시 잊어버려 따는 시기를 놓칠까 봐 메모지에 ‘보리수’라고 써서 잘 보이는 식탁 위에 뒀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우선 텃밭, 오이, 수박, 참외 등에 물을 주고 난 후 유효기간이 충분한 사다 놓은 요플레 네 개와 보리수 열매를 담을 비닐봉지를 챙겨 이웃집으로 갔다. 다른 때 같으면 진돗개 백구가 컹컹거릴 텐데 조용하다. 자동차도 없는 것 보니, 부부가 백구를 데리고 조금 멀리 산책 나가신 게 틀림없다. 


가져간 요거트를 현관 옆 탁자 위에 올려놓고 텃밭으로 갔다. 감자는 캤고 옥수수, 참깨, 호박 등이 튼실히 자라고 있다. 보리수는 이전에 한 번 따갈 때보다 적게 달려 있으나, 그래도 꽤 달려 있다. 보리수 가지를 들거나 나무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빨갛게 익은 열매를 땄다. 어떤 녀석들은 익다 지쳐 말라가고 있기도 했다. 보아하니 이제 끝물로 주인은 더 따지 않고 남은 열매는 못 먹게 될 것 같아 주인 얘기처럼 다 땄다. 땀이 뻘뻘 났다. 잎이 열 개 정도 달린 가지가 꺾인 채 매달려 있기에 비닐봉지에 넣었다. 


달린 보리수를 다 따고 옆집 대문 앞에 심은 우리 옥수수 아래쪽 잎을 따주고, 작물이 없는 곳 풀을 뽑았다. 마침 옆집 부부가 들어선다. 백구도 차에서 내린다. 


“남은 보리수 다 땄어요. 현관 옆에 요플레 네 개 갖다 놓았어요. 들어가실 때 잊지 마시고 갖고 들어가세요.”라고 했더니, “아유, 뭘 자꾸 주세요.”하고 하신다. 뭘 자꾸 주는 것보다 대체로 먼저 뭘 주시는 편이다. 백숙할 때 넣으라고 엄나무, 앵두, 참외, 복수박, 배추, 무뿐만 아니라 쌀까지 주셨다. 그러면 그에 대해 답례한다. 소박한 것들이라도 특별한 게 있거나 양이 조금 많다 싶으면 서로 나눠 먹는 편이다. ‘마음으로 주고받는 물물교환’이다. 


인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안내인이 붓다가야라는 곳에서 큰 보리수를 보여주며, 그 나무 아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었다. 그때 보리수 잎 말린 것을 판매하기에 여러 장 사 와서 주변에 나눠 줬었다. 


보리는 ‘보디’라는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으로 ‘깨달음’의 뜻이라 한다. 보리수 열매를 먹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 비움의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잎도 인도에서 가져왔던 것처럼 말려볼 요량이다. 가까이 두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밥 보다 그림을 택한 화가를 보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