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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라 부르련다

by 최순자


부모교육&교사교육 전문가 雲山 최순자. 선생님이라 부르련다.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2025. 1. 7.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던 분 스물 세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내용과 객관적 자료를 찾아 마을 역사, 특징 등을 정리해서 <한탄강 중리 이주마을 이야기>를 엮어냈다. 그 책을 바탕으로 학술회의를 주관했고, 올해(2025) 8월까지 한탄강 세계지질센터에서 기획전시를 한다.

인터뷰에 응한 분 중 한 분이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 차를 마시며 미처 인터뷰 때 다하지 못한 얘기를 두런두런 꺼낸다.


“지금은 정말 좋은 세상이지. 군대 가기 전에 일하고 집에 오면 배가 고파 허기져서 그냥 문턱에 쓰러져 있어.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나물로 멀건 죽을 써 와서 “아야, 이거라도 먹어라.” 해. 그걸 받아서 먹으면 동생들이 눈에 밟혀. 쟤네들은 뭘 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들 살았어요.”라고 혼잣말인 듯, 내게 들려주려는 듯 말한다.


동네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놀음을 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어린아이들이 갓난아이를 업고 다니며 돌봤다. 어린아이들이 안쓰러웠다. 그 아이들을 데려다 책 속의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면 그 아이들 마음이 순해졌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청년회를 만들었다. 청년들은 새벽에 일어나 나이 든 사람이 하기 힘든 퇴비를 산에 있는 밭에 갖다 놓기도 하고, 화전을 일구고 나무도 심었다. 구판장을 운영해 기금을 마련해 속초로 나들이도 갔다.


젊은 날의 열정을 칠십이 넘은 아직도 비췄다. 일제강점기 때 농촌계몽운동을 했던 심훈의 소설 <상록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이 떠올랐다. 앞으로 마을에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공동으로 식사도 하고, 놀거리도 만들어 함께 지내고 싶단다. 어디서 저토록 순수한 열정이 샘솟는 것일까. 그분은 말씀, 믿음이라 했다. 달리 말하면 사랑이다.


김종원 작가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를 다룬 책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을 자주 사용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에게 뭔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어디에 가든 최고의 학교를 즐길 수 있다.”라고 했다. 나도 그 어른을 “선생님”이라 부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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