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교사교육 전문가 雲山 최순자. 음식이 소환한 아버지.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2025. 1. 8.
지난해(2024) 여름 “셋이서 종종 차나 한 잔씩 하세요.”라는 권유로 이웃이 모였다. 종종 넷, 다섯이 되기도 했다. 8월부터 12월까지 일곱 번을 만나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식사는 특별한 맛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여행은 주로 걷기 코스로 다녀왔다.
앞으로는 회비를 걷기로 했는데, 그동안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만둣국, 생선구이, 두부 정식, 국밥 등 주로 나이 든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들이었다. 11월 진눈깨비가 날리던 날, 제일 연장자가 점심을 사기로 했다. “피자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두 사람은 “좋아하죠.”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화덕구이 피자집으로 안내했다.
김소영 작가의 <어떤 어른>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단상을 적고 있다. 어느 날 5학년 어린이가 “이상하게 요구르트를 마시면 일곱 살이 된 것 같아요.”라고 한다. 피자를 먹던 날 나는 이십 대가 된 듯했다. 다른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 즐거웠다. 5박 6일 일정으로 제주에 가서 걷고 맛난 것도 먹고 오기로 했다(12.3 이전 약속이라 함께해야 할 듯). 나의 더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해 낼 수 있을지.
3일째 모슬포항을 가기로 했다. 거기서 가파도를 가면 짜장을 맛나게 하는 집이 있단다. 그곳에 가면 10대의 나와 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가 나를 불러 앉혔다. “아야, 1년만 쉬었다 중학교에 가면 안 되겠냐? 니 오빠들 학비 대는데 힘들구나.”라고 하신다.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해 쉬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서랍 속에서 언제 어디서 돈을 빌렸고, 언제 갚았는지 스무장이 넘는 수첩을 발견했다.
중학교는 십리 길 읍내에 있었다. 6개 초등학교 졸업생이 다니는 여자 중학교였다. 한 학년에 매화, 백합, 장미, 목련 네 개 반이 있었다. 입학 전 반 편성 고사를 치르던 날이었다. 시험을 끝내고 교문에 나오자 자전거를 타고 오신 아버지가 서 계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짜장면집으로 데리고 갔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짜장이었다. 지금도 그 짜장 맛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가장 맛있는 짜장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처음 짜장을 사주시고, 골목 어귀에서 중학생이 된 고명딸의 귀가를 기다리던 하늘의 별이 되신 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